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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 비가 온다.

미라공간 2007. 9. 15. 00:47

 

오늘은 퇴근이 늦었다.

11시가 넘은 시간.

현관문을 열자마자 들어 와 잽싸게 잠금장치 두군데를 돌려두고 빗물이 떨어지는 새로 산 우산을 문고리에 걸어두고 화장실에 갔다가 주방불 스위치를, 그리고 방의 오른쪽 스위치를 켰다.

세상의 어느 곳보다 내게는 가장 안락한 곳.

이 공간을 너무나 사랑한다.

 

전철역에서 출구를 빠져나와 시장통을 걸어오면서 부터 내내 생각을 했다.

집 냉장고에 술이 있었던가? 없었던가?

포도주? 얼마 전 친구와 다 마셨지.

과일주? 언제 그런 거 담근적이나 있어?

맥주? 최근에는 산 적도 없잖아?

아... 술이 없구나.

슈퍼에 들려 술을 사야될까?

낼 출근도 해야하는데 참자....

 

그런데 집이 다와 가는 시점에서 불현듯 생각이 났다.

모날 어느 손님이 집으로 온 날.

사 온 소주중에 한병이 개봉도 하질않고 냉장고 문짝에 꼿혀있는 걸 기억해냈다.

안주는? 그렇지!!! 랩에 씌워 넣어 둔 불고기가 있지...

 

근데 이틀을 연달아 먹었던 불고기 보다는 얼려 둔 닭똥집이 더 구미에 당긴다.

전자렌지에 돌려 해동을 시킨 그 놈을 얇게 썰어 기름 두른 펜에 넣고 양파와 청양고추와 함께 볶아서 소금,후추를 뿌려 찬 소주와 함께 방으로 가져와 책상옆에 둔다.

 

책상앞 넓은 창너머로 빗소리가 들린다.

작고 깜찍한 선물받았던 소줏잔으로 서너잔을 마시자 쉽사리 취기가 도는 듯 하다.

티브를 켜자 케이블방송의 ocn에서는 '성범죄전담반'수사물 프로가 나오고 있다.

강간피해자인 여자는 수사관앞에서 진정하며 또박또박 상황설명을 하다 결국은 어깨를 들썩이며 울먹이다 힘겹게 말을 이어나간다.

누구든 짐작만 할뿐 격어 보지않은 자 진실로 그 심정을 알 수는 없다.

고개를 돌려 책상앞의 창을 열였더니 빗소리가 소스라치게 달려든다.

시멘트바닥과 지붕과 어느 차양막과 화분과 다른 온갖 것들을 두들리는 부산한 소리.

비가, 그리고 비가 내는 모든 소리가 좋다.

 

" 내 삶의 지침은 신이나 부모, 학교가 주는 게 아니라 오직 내가 스스로 찾아낼 뿐이야.

그것도 길고 오랜 시행착오의 세월을 거쳐서 겨우 ..... "

................................................................................................어느 님의 블로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