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종단-17차33일 08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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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출발 전 우여곡절이 있다.
둔장님과 보보스와 솔트렉챌린져팀의 2명과 모두 다섯이 함께 내려가기로 했는데 둔장님은 출발 이틀 전까지도 갈지 말지 결정을 내릴 수가 없는 상황이라 출발스케줄을 잡기가 곤란했었다. 그리고 금요일. 보보스는 일이 늦어 12시가 넘어 출발할 수 있다고 하고 챌린저의 두 사람 중 한사람은 되도록 늦게, 한사람은 아무 시간 때나 가능하다고 했다. 그렇게 늦어질 것 같으면 나또한 근무시간을 늦춰 잡아야 했는데 목요일 늦은 밤까지 정우와는 끝끝내 연락이 되질 않아 근무시간 변경을 할 수가 없었다. 당일 가기로 결정이 된 둔장님을 먼저 가시라고 하고 나머지는 11시에 이천에서 합류해서 참치 회를 먹고 12시에 출발하기로 결정을 하기는 했다.
그리고 7시 반에 퇴근한 나는 할 일이 없었다. 시간낭비를 돈 낭비와 같다고 생각하는 내가 할 일은 전철역내 의자에 앉아 잡지를 보면서 시간 때우기였다.
거기다 차를 가져가기로 한 한명이 갈 수 없다는 통보를 해 온다. 나머지 한명이라도 오라고 하기에는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나있어 이천까지 올 차가 있을지 없을지도 불투명하다. 뒷목이 뻣뻣해져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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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보스의 참치집에서 12시에 출발하기로 한 계획은 빗나가 버리고 회를 곁들인 술을 여러 잔 마시고 나자 2시 반이 넘어가고 있다. 다시 강원도 행이다.
차 안에서 해가 떴다는 소리에 얼핏 선잠에서 깨어 눈을 뜨니 진주황의 해가 실구름 몇 가닥을 걸치며 올라오고 있었다.
강원도 고성에 들어선 시간이 5시반가량.
화진포해수욕장으로 들어서는 길목에 눈에 익숙한 빨간색 티셔츠가 강둑에서 어른거린다.
차 세워!!! 다급하게 차를 세우고 장팀장님과 반가운 인사를 한다. 근데 이렇게 이른 시간에 산책을 하다니? 간밤에는 술을 안 드셨는지 의아하다.
주차장에 도착해서 3시를 훌쩍 넘긴 시간에야 잠들었다는 대전팀과 형록씨를 깨웠다. 대신 밤새 운전했던 정우와 조수석 말동무가 되어줬던 보보스가 각각 차와 한곁의 침낭으로 잠을 청하려 간다.
오늘 아침식사는 역시 형록씨가 준비한다.
이른 아침부터 햇살이 심상치가 않다. 밥을 떠 넣으면서 구름도 없는 하늘을 걱정스레 바라본다.
식사뒷정리를 하고 세수를 하고 배낭을 꾸리고 차에 올라 오늘의 도착지 ‘거진‘으로 향했다. 그곳에 차를 두고 지난번 종착지 천진초교입구로 이동할 것이다.
오늘 출발인원은 총 11명. 사람이 많다보니 이래저래 지체되는 일이 생긴다. 우리가 타야하는 1번과 1-1번을 거듭 보내고 세번째 버스에 오른다.
예상외로 거리가 먼데다 차비도 많은 액수다.
20일 만에 지난번의 도착지이자 오늘의 출발지에 내리자 그때와 마찬가지로 흰 담벼락에 붙어 분홍색 꽃을 피우고 있는 장미나무가 보인다.
9시13분.
국순화이팅!!을 외치며 출발!!
10여분을 걸어가자 ‘천강정‘이라는 바닷가 정자가 나온다. 조선시대 지어진 것으로 두 번의 화재로 인해 송시열이 쓴 현판이 없어지고 지금 걸려있는 것은 이승만대통령이 쓴 것이라고 한다. 복구를 거친 정자에 올라가 보니 앞으로는 동해바다를, 뒤편으로는 설악의 울산바위가 성큼 다가와 있었다. 풍수지리학으로 보자면 훌륭한 자리라고 하는데 사방의 경치가 역시 빼어났다.
출발지에서 찍지 못한 단체사진을 이곳에서 찍기 위해 플래카드를 꺼냈다.
아침을 먹지 못한 일행을 위해 정류장에서 잠시 앉았다.
국토종단중 버스정류장은 우리들의 휼륭한 쉼터였다. 볕과 추위와 비와 바람을 막아주는 데다 다리를 쉬게 할 의자까지 갖춰져 있는 완벽한 장소였다.
그리고 강원도땅에 들어서면서 이곳은 또한 관광지를 알리는 흥보역할도 하고 있었다. 지도위에는 상세하게 표시한 여러 지역과 간략하게나마 관광안내문구들이 빼곡히 차있다. 충청도에서는 특산물인 인삼이라던가 고추등을 알리는 홍보문구가 정류장 측면이나 안쪽에 붙여져 있어 우리같은 객의 눈길을 끌었다.
이야진해수욕장.
항구는 건물들과 이런저런 가계와 차들로 북적거리는데 좀 더 진행을 하지 한산한 백사장이 펼쳐졌다.
개장을 했다고는 하는데 아직은 해수욕객이 없어 한산하다. 토요일이라 오후에는 사람이 몰릴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더운 여름날 이런 바다는 매력이 없다. 나라면 숲그늘이나 계곡을 찾아가겠다.
모퉁이를 돌아가는데 바다쪽 갓길에서 일행들이 일제히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뭔가 해서 가봤더니 해녀한분이 물속에서 나오려고 하는 것이 보였다. 가자고 채근을 하였음에도 걸음을 떼지 못하는 이유는 바다 밑에서 건져 올린 해산물의 내용이 궁금한 때문이었다.
천학정
작년초였을까? 아마 정초였던 것 같기는 한데 겨울날 이곳을 잠시 들른 기억이 났다. 그때는 정자에 앉아보지도 않고 달랑 사진 두어장만 담고 내려갔었다.
유독 이 정자 안에서만 서늘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여기저기 배낭에서 나오는 먹거리들. 먹는 동안은 언제가 뿌듯한 충족감.
불볕더위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새벽녘 차에서 일기예보를 흘러듣자니 낮 최고 기온이 37도라고 했었나? 누구는 이 지역에 폭염주의보가 내렸다고 전한다. 아스팔트의 반사열까지 한다면 40도가 넘는 심각한 더위 속을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차가운 것이 먹고 싶다. 그게 이왕이면 냉커피였으면 좋겠다싶어 산에에게 말을 건넸더니 100여 미터 떨어진 가계로 성큼성큼 걸어가 얼음 한 봉지를 사온다. 언제나 고마운 친구.
커피를 만들고 있는 사이 보보스가 대형패트맥주를 사온다. 이런... 차가운 맥주가 반갑기도 하지만 마시고 나면 더 덥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맹렬한 더위 속을 걸어가느라 모두는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사정이 있어 두어 달을 쉰데다 평발인 산에는 벌써 발바닥 물집 때문에 고생하는 것 같다. 급기야 신발을 벗어들고 걸어간다. 아스팔트 위가 더 뜨거울 텐데 그래도 그 편이 나은가 보다.
길가에는 가로수도 없고 건물도 없다. 더위에 약한 체질은 아닌 것 같은데 나는 약한 현기증을 느낀다. 이런 길에서라면 쉴 곳도 없을 거라는 걱정을 하는데 멀리서 육교가 보였다. 다가갔더니 다행히 앞서간 일행들이 쉬고 있었다. 드디어 그늘을 만났다. 바람이 드는 자리를 골라 털썩 주저앉았다. 어째서 이동네는 가로수도 안 심어놨냐고요!!! 여름날이면 국토순례행렬이 꽤 다닐텐데 도보여행객들에 대한 배려가 아쉽다. 고성군의 진입로에 서있던 소나무 몇 그루가 이 지역 가로수의 전부였나보다.
바닷가라면 해풍이 불어 좀은 낫지 않을까 싶어 큰길가에서 벗어나 들어갔다. 어..이곳도 왔던 곳이네. 참 그러고 보니 일일이 기억도 할 수없이 이 나라 구석구석 다녀 본 곳이 많구나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좀 전에도 그러했지만 희한하게 이 정자 앞에서만 유독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길이 막혀버린 바닷가를 벗어나 다시 도로로 접어들어 가다보니 멀리서 터널이 있는 것이 보였다. 그래 시끄럽거나 말거나 역시 그늘이 젤이다 싶어 내심 반가운 마음에 걸음을 빨리해 가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이런.. 뒤돌아 오라고 하는 산에의 목소리. ,식당에 들어가 앉아있다고 하네. 그렇잖아도 언제 점심을 먹나 기다리고 있기는 했는데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가자니 이만큼 온 것이 아까운 생각. 그래도 식당내부는 시원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걸음을 재촉한다.
제일 먼저 들어간 곳이 화장실. 세수를 하다가 내친김에 생전처음으로 식당화장실에서 샤워기를 틀어 머리에 뿌렸다. 목과 가슴팍을 문지르고 팔뚝과 다리까지 쓱쓱 .. 살 것 같다.
이층으로 올라가자 맥주가 한잔씩 테이블에 놓여있고 에어컨에서 나온 냉기로 꽉 차있었다. “여긴 천국이야” 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전원 물회.
동진항의 잠수부 횟집만큼은 못하지만 낙산의 파도횟집보다는 훨씬 훌륭한 밑반찬과 오징어회와 장어회가 듬뿍 들어간 시뻘건 국물위에 얼음이 동동 떠다니는 물회가 나왔다. 나는 다시 극락을 맛본다.
한 시간 30여분이나 앉아있던 횟집을 나왔는데 얼마나 다행인지 하늘은 구름으로 덮혀있다. 게다가 바람이 제법 거세어 졌다. 아침나절 울산바위 뒤쪽에서 웅크리고 있던 구름들을 원망스레 바라보며 걸어왔는데 점차 펴져 우리의 머리 위 하늘을 덮은 것이다.
더위가 한결 수그러든 데다 한적한 농로를 걸어가자니 점차 흡족한 마음이 든다. 비로소 싱그러운 풀 냄새를 맡게 되고 눈을 마주치는 개들에게 안녕하며 인사를 할 여유가 생긴다.
꽃이라는 것은 손길이 닿지 않는 깊은 산속이나 인적이 드문 들판에 있어야 더욱 귀하고 고고하다고 했던가? 하지만 내게는 모든 꽃들이 한결같이 예쁘며 사랑스럽다.
논두렁은 멋들어진 s라인을 만들고 있었다. 이렇듯 흐르는 듯 자연스럽고 자유스러운 곡선이 가장 아름다운 선이 아닐까?
시골길에서 익숙해진 소똥냄새에 고개를 돌려보니 양옆으로 우사가 있었다. 호기심이 가득한 눈망울을 조심스레 굴리며 우리를 쳐다보는 순한 동물에게 울컥 연민이 생긴다. 동물이기는 하지만 태어나서 줄 곳 갇혀 지낸다는 것은 너무 가혹한 형벌이 아닐까? 고작 2-30여개 월을 살면서 저 큰 덩치들이 좁은 우리에서 먹고자고만을 반복하며 식용으로 쓰여지기위해 살만 찌우는 생을 살고 있다니.. 인간들이 육식을 하지 않는다면 이런 사육은 없어질 텐데 라는 생각을 잠시 해 본다.
4시를 조금 넘기고 있었다.
대로변을 따라 걸어가던 덕렬형이 오른쪽 신도로로 빠지자고 손짓을 한다. 분명히 지름길일거야. 포장도 하지 않고 흙으로 다져놓은 너른 땅을 밟고 가기를 30여분. 이런!! 길이 끊어졌다. 폭이 꽤 넓은 개울을 가로질러 놓여있는 다리가 입구에서는 높다랗게 절벽을 만들고 있었다. 샛길로 다시 가다보니 바다가 보이는데 그 쪽은 멀리서 보자니 다리기둥만 놓여있었다. 마침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는 농부에게 여쭤봤더니 바닷가로 곧장 빠지는데 건너편으로 가는 길은 전혀 없다네. 다시 뒤돌아 나오는 중 걱정스러워하는 일행의 전화를 받는다.
물이 덜 고인 개울을 찾아 내려가 물길을 건넜다.
앞서간 일행과 한참이나 떨어졌겠다고 생각했는데 길가의 공원에 앉자 일제히 우리를 맞이한다. 그리고 좀 전에 서울에서 내려온 권과장이 합류하게 된다.
싱그러운 바람이 일렁이고 있는 푸른 들. 낮은 지붕의 농가들. 풀숲을 넘나드는 참새떼.
나는 이런 풍경이 좋다. 낮 동안의 열기가 사그라져 서늘해진 바람이 좋다. 저마다 안식처를 찾는 분주한 걸음을 하는 해질녘이 좋다.
어째서 좁은 도로의 양옆에 저런 구조물을 얹어놨는지 궁금했었다. 군 시설물이기는 한데 아마 전시에 몸을 가리고 총을 쏘기 위한 방패막 같은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랬는데 누군가의 설명을 듣자니 6.25와 같은 남침이 일어날 시 저 큰 시멘트구조물을 떨어트려 탱크 등의 진입을 막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한다. 그렇구나. 전방이 가까워졌다는 것이 새삼 실감이 났다. 그리고 보니 남쪽바다와는 달리 이곳 바닷가에는 유독 철조망이 빼곡이 세워져 있다.
거진대교를 들어서고 오른쪽 바닷길로 접어들자 거진해수욕장이 이어졌다.
오늘의 종착지에 도착해 차에 오르고 일부는 수산시장으로 일부는 화진포로 향했다.
뒤이어 온 일행의 장보따리에는 오징어와 광어회가 듬뿍 들어있다. 매운탕거리까지 담아왔다.
화진포바다에 시나브로 어둠이 내리고 우리들의 푸짐한 뒤풀이가 시작되었다.
먹고 마시느라 한 시간여가 지났는데 썬과 보라감자가 일어나더니 식수대로 갔다.
이곳은 어제야 개장을 해서 해수욕객이 미쳐 없어서 인지 화장실도 제대로 정비가 되질 않았다. 게다가 일인당 2000원짜리 샤워장 또한 문을 닫아둔 채이었다. 물에 적힌 타월로 몸이나 닦으려고 했던 것 같았는데 한명이 장난삼아 물세례를 끼얹더니 식수대에 서서 저마다 물을 뿌리느라 난리가 났다.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적당히 한 나는 잠잘 채비를 했다. 이번에는 다행히 말리는 사람도 없네. 전날 밤 못 잔 잠을 오늘 보충을 해야 한다.
30000원을 주고 빌린 대형파라솔 한 귀퉁이에 누워있자니 모기가 극성이다. 모기향을 피워두고 다시 잠이 들었는가 싶었는데 이번에는 모래바람이 어찌나 거센지 역시 잠을 깬다. 침낭커버를 머리끝까지 뒤집어쓰면서 혹 벗어 둔 신발이 날아가거나 불붙은 모기향이 날아가 침낭이나 태우는 건 아닐까 걱정스러워 수시로 확인하느라 잠을 설친다.
▶날 짜 : 2008년 7월 5일(토요일)
▶간 곳 : 강원도 고성군 천진초교 ~ 천간정 ~ 이야진 해수욕장 ~ 천학정 ~가진리 ~ 거진항
▶시 간 : 9시간 32분 (휴식 2시간 30분 포함)
▶거 리 : 28.0km
▶누계거리 : 797.2km
▶동 행 자 : 둔장, 산그리고, 감자, ⓢⓤⓝ, 보라빛바다, 강산에, 보보스, 솔트렉첼린져팀.
▶코 스 :
. 08시 25분 : 화진포해수욕장에서 차로 이동
. 09시 13분 : 고성군 천지초교입구에서 출발
. 09시 30분 : 천간정 기념사진
. 10시 43분 : 천학정 도착 휴식
. 11시 57분 : 삼포프레스코 콘도앞 휴식
. 13시 30분 : 가진리 영금정식당에서 중식
. 18시 24분 : 거진대교 통과
. 18시 45분 : 거진항 도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