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공간 2009. 5. 27. 10:33

 

 

 

 080502

경산역도착.

오늘은 대구쪽으로 걸어간다.

 

오월은 이제 예전의 화창한 날씨가 아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햇살이 따가워지면서 더워진다.

큰길가에서 오른쪽으로 틀어 언덕으로 오르자 큰 현대식건물이 보인다. 공원처럼 조성되어있는 곳을 지나 다다르자 올림픽때 경기장으로 사욯했던 곳이라고 한다. 지금은 이 곳을 사욯할 만한 행사도 없고 해서 무용지물처럼 되어버렸다고 하네.

화장실시설은 잘되어있어 옷을 갈아입고 세수를 하고 땀을 씻어내느라 팔둑을 문질렸다.

시원한 음료수와 과일로 배를 채우고 다시 출발한다.

 

 

 

 

  

 

  포도나무를 심어놓은 과수원과 논밭사이로 난 농로를 걸어가는데 땡볕이라 일행들은 더워에 지쳐간다.  비닐까지 뒤집어 쓰고 있는 포도는 그래서 더 실하게 영글어 가겠다.

오늘 처음온 감자의 손님. 의외로 잘 걸어가고 있다.

 

 

 

  

 

갑자기 번잡한 동네가 나타났다싶었는데 대구였다.

시장에서 점심거리를 사서 다시 얼마쯤 걸어가자 연초록 물이 담긴 호수가 나타났다. 오래된 버드나무가 강의 테두리를 에워싸고 있는 곳. 물새와 아이가 뒤뚱거리며 걸어가고 사람들이 한가한 모습으로 서성이는 풍경이 펼쳐졌다.

점심먹을 자리를 찿아야했는데 옥수수며 음료수를 비롯한 잡다한 먹거리를 파는 아주머니께서 선뜻 의자가 있는 너른 장소를 내어주신다.

라면과 만둣국을 끊이는 동안 남자들은 술잔을 주고받는라 희색이 만연이다. 나는 낮술은 반갑지가 않다. 더군다나 더운 날 마시는 건 더 힘들다. 대신 마시면서 즐거워 하는 모습을 보자니 덩달아 기분은 흐뭇해진다. 

 

 

 

  

 

식사를 마치고 동식과 여친은 서울로 돌아갔다. 감기가 심해 도저히 함께 할 수가 없어서 였다.

남은 일해들끼리 다시 진행.

 

대구의 유명한 달천강이 나타났다. 한강변보다는 규모는 작지만 여기저기 공을 들인 흔적이 보인다. 계절에 따라 피고지는 여러 가지 꽃나무며 가로수, 너른 잔디와 벤치, 체육시설들이 잘 갖춰져 있었다. 그 사이로 산책하는 사람들, 운동하는 사람들, 소풍나온 가족들의 모습들이 줄 곳 이어졌다. ‘대백‘이라는 닉네음을 달고있는 백화점을 지나고 곳곳의 분수대를 지나서 서쪽으로 쭉 걸어갔다.

 

 

  

 

  

 

몇해전 대구참사의 기억을 떨쳐버려도 좋을만치 여유있는 평화로운 모습이다. 더러 누구는 대구사람들 모두를 싸잡아 미친집단이라고 하기도 했는데 그런 망발을 상쇄하고 대구는 빛을 내고 있다.   희생자가족들의 한스러움을 담았을 강물이 그때나 지금이나 잔잔히 흘러가고 있다. 

 

 

 

 

  

 

신발벗은 산에와 보보스. 사진찍기에 골몰한 여포님. 이렇게 함께하는 일행들이 흡사 가족같은 친근함이 느껴진다. 한솥밥먹고 한 공간에서 잠자기를 벌써 몇해를 해 왔는지... 어쩌다 보는 부모형제와는 또 다른 끈끈한 유대가  생겨났다.

 

 

 

 

        

  

  

오후4시가 넘어서자 가는 비가 조금씩 내리기시작했다. 이제는 지나는 사람도 없고 강변로도 좁아져 갔다. 마른 흙과 수면위로 때리는 빗줄기는 바라보자니 가슴속이 시원하다.  흙냄새. 알싸한 풀냄새, 좀 전의 무더위는 다 어디로 갔을까.

인적없는 길에 가끔씩 긴날개를 펴고 너울거리며 날아가는 물새가 보였다 사라진다. 

 

 


 

 

 

유명한 대구의  칠성시장이다. 맨먼저 비린내와 오물냄새가 역하게 덮쳐온다,. 시장안의 온갖 쓰레기와 하수가 이곳으로 흘러나오는 듯했다. 지저분한 이곳까지 맨발로 걸어가는 보보스에게 그만 신발을 신으라고 말하고 싶었다. 

이 뒷골목풍경속에서  어서 벗어나고 싶다

 

공터에 만들어진 축구장옆으로 다리가 높다랗게 걸려있는데 그 아래에서 오늘하루를 묵기로 한다. 희뿌연먼지가 겹겹으로 쌓여있는 의자가 여럿놓여있고 바닥은 역시 지저분한 자갈로 덮혀있다. 길거리 숙박지중 가장 어수선하고 심란스러운 곳이긴 한데 비를 막을 수 있고 근처에 수돗가가 있어 그래도 다행이다 싶다. 좀전부터 거세게 내리기 시작한 비는 여전히 마구 쏟아지고 있다.

옷두어개와 바지까지 겹쳐입은 데다 우의를 다시 뒤집어 썼다. 좀 전에 비를 맞아 혹 체온이 떨어질까 염려스러웠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비가 그쳐있었다.

밤새 비에 씻겨 말갛게 된 하늘과 풀숲과 촉촉해진 땅을 밟고 걸어갔다. 불어간 강물이 거세게 흘러가고 있다. 부지런한 낚시꾼들이 이른 아침부터 강둑에 자리를 잡고 있다.

 

 

 

  

 

 

대부분의 야채들이 비닐하우수재배를 한다고는 얼핏 듣기는 했는데 저렇게 투명한 비닐속에서 호박이 커가고 있는 걸 보니 새삼스럽다. 뚫어놓은 천장을 지나 하늘을 향해 덩굴을 이어가고 있는 초록 잎사귀들에서 강한 생명력을 느낀다. 심지어 두 겹의 비닐사이에서도 잡초는 튼실한 줄기와 입을 달고 비집어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저렇게 살고 있는가.... 언제나 상황이 나빠지면 이런저런 탓만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래서 안 되고 저래도 안 되는 핑계거리를 찾기에 급급했던 건 아닐까? 실은 부모탓, 환경탓을 많이도 하기도 했었다. 자주 그랬었다.

내가 속한 여건이 여하튼간에 나는 견디어 내야 했는데 곧잘 주저앉곤 했다. “될대로 되라“그렇게 무책임하게 스스로의 삶을 방치해서 아무렇게나 흘러가게 했다. 나는 대책 없는 방관자, 비겁하고 무기력한 떠돌이였다.

강물의 거침없는 물살, 환영 받지 못하는 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잎을 키우는 잡초의 의미를 곱씹으며 걸음을 옮긴다.

 

 

 

  

 

 

 

 

 

 

점심시간이 길어졌다. 처음 앉았던 고가도로밑 다리그늘은 해가 움직이면서 덩달아 이동했다. 땡볕을 견디다 정리를 하고 일어났다.

다시 살랑이던 바람도 없고 햇살만 내리쬐는 길이 연이어 나있다. 도대체 가로수는 어디에 있냐고.. 가로수라는 단어도 모르는 동네인가 봐.  보성의 메타세카이어길이나 청주입구의 플라타너스길 정도를 바라지는 않는데 길가에 듬성듬성이라도 나무좀 심어놓자구요....


낮술에 취해서였을까? 벌게진 얼굴로 씩씩거리며 앞질러 걸어가는 산에는 도로 맞은편의 버스정류장에서 배낭에 팔과 머리를 대고 않았었다. 잠들었을까? 좀 있다 일어나겠지. 길을 가로질러 가서 깨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지나쳐 왔다.


땡볕을 견디며 걸어가다 보니 점차 지쳐간다. 육교라도 나타나면 그나마 잠시 열을 식히고 간다. 어제내린 비 때문에 주춤했던 더위가 오늘 겹쳐진 것 같다.

 

 

 

  

 

땡볕을 견디며 걸어가다 보니 점차 지쳐간다. 육교라도 나타나면 그나마 잠시 열을 식히고 간다. 어제내린 비 때문에 주춤했던 더위가 오늘 겹쳐진 것 같다.

 

 

 

 

구멍가게를 만나서 하드를 하나씩 물고 잠시 쉬었다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에 다시 힘을 얻어 걸어간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집들이 줄지어 있어 그늘진 담집을 끼고 가느라 햇살을 피할 수 있었다.


왜관역에 도착.

한참을 기다려도 산에는 오질 않는다. 그 곳에서 아주 깊이 잠이 든 모양이다. 중간 중간 전화라도 계속 해 볼 걸 그랬다.

차 두 대에 나눠 타고 뒤풀이를 하기위해 대전으로 갔다. 아침에 간 선을 만나서 늦은 식사를 하고 서울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