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7
신성임이라는 친구가 같이 가기로 하고는 사당역에 나와서는 생리와 저혈압과 이번 산행코스가 힘들것 같아 도저히 갈 수없다고 한다.
아는사람이라곤 아무도 없어 나도 가지않는다고 버텼다. 그런데 허현자라는 범방친구가 나타났는데 둘이 무슨 신호를 주고받았는지 길게 늘어난 내 벨트를 잡고서 강제로 버스에 태웠다. 다시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어색하고 어정쩡해 하느니 차라리 혼자 다니는게 낫지싶었다. 그래도 산행준비를 하고 여기까지 나선게 아까와 버스에 오른다.
차안에서 다시 범방친구를 만났다. 이귀현. 우리 또래들이 활동을 많이 하기는 하는건지 어디가나 자주 보게 된다.
뒷자리에 앉아 그들이 권하는 소주 두어잔을 마시고 꾸역꾸역 애써 잠을 청했다.
잠을 얼마쯤 잔 것 같지도 않은데 벌써 버스가 멈춰서고 대장되시는 분이 도착했음을 알린다. 시간은 4시반경. 새벽산행이 시작된다. 처음 온 이 산악회사람들은 초반부터 어찌나 빠르게 움직이는지 따라가는 것이 몹시 힘겹다. 한 시간이상은 걸어야 호흡과 다리근육이 풀어지는 내겐 고역이다. 꾸역꾸역 가다보니 가파른 오르막. 그때부터 조금씩 처지는 사람들 덕분에 한결 여유를 찿을 수 있었다. 호흡과 다리가 이제야 풀리려나 보다. 그럭 저럭 정상까지 가는 중 서서히 날이 밝아온다. 조망은 별로였지만 잘 견디어 왔다는 뿌듯함. 정상에서의 아침식사는 도시락을 준비못한 덕에 슬그머니 과자부스러기 몇개 꺼내놓고 눈치를 봐야했다.
하산한지 40분만에 계곡산행의 시발점 용소골에 도착했다. 담박에 계곡물 소리가 청량하게 귀를 간지럽힌다. 작은 소들과 양옆의 웅장한 절벽과 물아래 자갈사이를 간지럽히며 흔들거리는 물고기들 그리고 청녹색의 물빛에 눈길이 자주 머무르곤 했다.
그러나 얼마가지않아 계곡산행에 대한 기대가 점차 무너져 가고 있었다. 한 여름속 물가를 따라 걷다보면 좋은 경치와 물소리 새소리 계곡을 휘감는 청량한 바람소리에 더위도 사그라지고 물가에 늘어진 돌들위를 밟아가다보면 산행은 가뿐하게 끝이 날줄 알았다.
우선은 길이 제대로 나있지 않았다. 사람이 자주 다니는 곳이 아니다 보니 나무가지들은 멋대로 뻗어있고 넝쿨들이 가로걸쳐있고 풀들이 덤불을 이루고 있었다. 그 사이를 헤치고 가느라 굵은 나무가지에 무려 8번이나 머리를 부딪히고, 팔다리 할것 없이 상처가 났다. 게다가 밧줄을 잡고 물가 절벽에 붙어 조심조심 지나야했다. 아차하면 물속에 처박히게 될 상황이였다. 어떤 분은 팔을 또 어떤 분은 발을 삐고 넘어져 피를 흘려 상처를 싸매고 가기도 했다.
게다가 가도가도 목적지는 쉬 보이지 않는다. 새벽에 출발했는데 도데체 몇 시에나 도착을 할 수있는지 감을 잡을수도 없고 청량하던 물소리마저 지루해진다.
물가이긴 해도 덥기는 해서 옷 입은 채라도 물속을 한번은 들어가 봐야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 적당한 곳을 고르며 걸었는데 기회는 놓쳐버리고 식당인듯 민박인듯 계곡이 끝나는 시점에 도착을 했다.
이곳이 덕풍마을이라 한다. 이곳에서 다시 버스가 있는 곳으로 가는 시간이 3-40분 남짓 걸린다고 하네. 간단히 막걸리 한사발씩을 마시고 나머지 일행이 다시 모이길 기다렸다. 다행이 트럭을 탈 수있어 짐칸에 앉고 서고 해서 버스가 대기하고 있는 곳까지 왔다.
총11시간 정도의 산행. 하루에 하기에는 몹시 긴 거리였다.
버스안의 반가운 내 자리. 그리고 에어컨바람.
낼 출근이 걱정이다.
갑작스레 긴 산행을 하느라 다리에 무리가 갔을거다.
직장동료들에게는 장마때라 계곡물에 휩쓰려가서 혹시 티브에 나올지도 모른다고 하고 왔는데 다행히 비는 오지않고 산행내내 햇빛만 쨍쨍했다.
오는 길에 소낙비가 잠시 오다 그치고 서울에 오자 다시 비가 내리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전철을 타기위해 이촌역에 섰다.
주황색 가로등불빛 아래로 사선을 꼿으며 내리는 비를 보자 기분이 그랬다.
허둥지둥 지쳐 걸었던 그래서, 힘들고 지루하고 아쉬움도 없을 것 같았던 계곡속의 용소.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는 그 용소의 검은 물이 환영처럼 눈앞에 나타났다.
그런데 불과 서너시간만에 다시 그 곳에서 용소의 검은 물을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왜 일까? 다시 전투같은 일상으로 돌아왔다는 두려움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