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렴동산장을 지나치려 하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과장스레 손을 흔들고는 다가갔다.
그 분들이 식사준비를 하고 계시네.
얼마 되지도 않는 찬을 꺼내놓고는 밥물을 맞추고 불을 붙쳤다.
찌개를 하시나 보다 해서 들여다봤더니 맹물에 김치만 풍덩 쏟아 붓고는 그만이었다.
엽기적인 어젯밤 김치찌개.
김치에다 뭘 넣으셨을까? 뭔가 했더니 짙은 갈색 나는 계란이 떠올라 있었어.
뭘 넣으셨어요?“
먹어봐여. 맛있어. 간도 딱 맞네.
소고기 장조림을 덜컥 부어서 만든 김치찌개.
맛을 보자 간이 맞기는 했지만 난생처음 점해보는 이상야릇한 맛이었다.
ㅎㅎㅎ
오늘은 맹물에 그냥 김치였어.
먹던 햄을 넣고 고추장과 된장을 넣고 풋고추를 툭툭 잘라넣었어.
좀 낫다 ...
코펠에 남은 밥을 일부러 눌려서 숭늉을 만들었다.
정말 환상적인 맛이야!
스님들이 많이 다니시네.
혼자바윗돌에 앉아 과일을 꺼내놓고 계신 어느 분.
다가가 뭔 말인가를 건네고 싶은 맘이 간절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어.
몇 마디를 건네다가는 덜컥 속내를 보일 것 같아 머뭇머뭇 입술을 들썩이다 그렇게 지나칠 수 밖에...
백담사에서 밤을 보낼 어느 날이 어서 와 주기를 바라는 맘으로 위안을 안고 그렇게 다시 세상으로 통하는 걸음을 옮길 수밖에...
뭔가 기척이 느껴져 발치를 봤다.
뱀이 요동을 치면 푸르르 뒤척이고 있었어.
악!
왜 너는 하필 겁 많은 내 앞에서 이러고 있는 거야.
나는 네가 내 발목을 물어뜯을까 그런 상상으로 얼마나 끔찍해 하는데...
발걸음도 못 떼고 굳어 버렸다.
그 놈을 외면하지도 못하고... 등줄기로 이마로 서늘한 소름이 돋았다.
앉아서 무심코 바로 앞을 볼 적마다 움직이는 것들이 있어.
이쁜 연두색과 무수한 발을 꼬물거리고 기어가는 애벌레. 수다스럽게 움직이는 거미, 앞뒤가 뭉툭한 가는 몸을 접어 나아가고 있는 자벌레.
후다닥 일어나 엉덩이를 쓸어내렸다.
혹여 앉을 때 밑에 깔려 내장을 터트린 어느 벌레가 있을까...
텅 비어있는 산길.
스슥 스윽 낯선 소리가 났다.
뒤를 봤다.
아무도 없네.
무슨 소리지?
“악 아악“
아이가 내는 고음처럼 찢어지는 소리.
화들짝 놀라보니 바로 머리 위 까마귀울음.
다시 등줄기가 서늘해지면서 가슴이 철렁거렸다.
스슥스슥 낯선 소리는 내 바지가 걸을 때 마다 부딪는 소리였음을 잠시 후 깨달았네.
백담사를 지나 큰 화강암돌다리 건너에 산악회분들이 무리를 이루고 계시네.
아! 반가운 마음에 걸음을 빨리하려다 알아차렸네.
저 분들은 우리 회원들이 아니네
나는 혼자 왔지 않은가...
어이없는 착각.
산장에서 만난 세분의 남자.
잘 생기고 근사한 체격과 당당함과 친절함에 반했습니다.
제게 베풀어주신 따스하고 세심한 마음씀에 산행의 무거움이 덜어졌어요.
그 세분 어찌나 정이 두터웠는지요.
서로 건네는 농 섞인 말에 참 많이 웃었습니다.
연세가 일흔이 넘으신 게 좀 아쉬웠던, 아마 보다 젊으셨으면 홀랑 마음을 빼앗겼을련지도요.ㅎㅎ
세분 어르신.
다음 어느 산에선가 그 분의 말마따나 다시 뵐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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