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기/산으로**가기

설악산 한계령-소공원 041018

미라공간 2007. 2. 6. 19:02

 

이미 단풍이 져 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염려와 어쩌면 아직도라는 기대를 가지고 출발했다.

단풍이 없으면 어떠랴...

3년 전 하산했던 한계령을 출발지로 잡았다.

그곳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바라본 설악산자락에는 근사한 색채로 버무려진 단풍이 한창이었다.

뒤좌석의 등산객들이 지르는 탄성에 덩달아 마음이 설랬다.

근데...어이없게도 한계령매표소를 지나자 기대했던 단풍은 없다.

12월초쯤의 영락없는 겨울산이다.

이미 암적색으로 탈색해 버린 단풍잎은 그나마도 대부분 땅에 떨어져 횡한 가지를 간혹 부는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흐린 날 구름인지 안개인지가 시야를 가려 조망도 없어버렸다.

바람결에 먼데 산들이 간헐적으로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중청봉을 향해 가는 어느 산등성이.

하루해가 진다.

핏빛 단풍대신 산 너머로 떨어지는 해가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

 

중청산장에 이르자 주중임에도 사람들로 가득 붐비고 있다.

영하2도.

춥다. 가져간 랜턴은 미미한 빛을 힘겹게 비춘다.

배터리가 없는 탓이다..

이런 언제나 준비부족..

얼려두었다 가져온 꼴뚜기는 배낭 속에서 녹아 물이 샛나 보다.

그 아래 있었던 윈드자켓에 얼마쯤 묻었는지 비린내가 났다.

그래도 추위에 별 수 없이 걸쳐 입고는 저녁준비를 한다.

뜨거운 물에 쏟아 부어 익힌 꼴뚜기를 초장에 찍어 반찬 겸 안주를 한다.

산속에서 먹는 별식..맛있다.

처음 마셔보는 곡주. 이름은 모르지만 그것 또한 맛이 좋다.

산장 뒤편으로 초승달이 떴다.

별이 드문드문한걸 보면 아마 내일아침이면 시계가 좋을지도 몰라. 그리고 근사한 일출을 다시 기대해도 될지도 몰라.

 

자리에 들었으나 좀 전 홍차를 마셔서 일까..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사람들의 뒤척임 소리, 코고는 소리, 서로 농을 건네며 주고받는 얘기소리가 줄곳 이어지는 동안 결국은 밤을 새버렸다.


6시에 커피를 끓여 보온병에 담고 대청봉으로 향했다.

6시35분이 일출시간이라는데 수평선을 노려보는 동안 시간은 참 더디게 간다.

불그스레한 띠를 두르고 있던 햇살이 점점 황금색으로 변하는가 싶더니 감았던 눈을 번쩍 뜨는 듯 불끈거리는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뒤편에서 사람들의 탄성에 이어 박수소리가 나왔다.

소원을 빌어야 하는데... 눈을 감으면서 생각했으나 그 짧은 순간 무슨 말인가로 어휘를 만들어야 할지를 몰랐다.

그저 내 마음에 담아두었던 것이 자연스레 전이되기를 바랐다.

한번씩 눈을 깜박일 때마다 부쩍 솟아오른 해는 눈부신 빛을 뿜어내고 오롯이 올라왔다.

후끈거리는 열기.

 

소청봉을 지나고 희운각에 다다라서야 아침준비를 했다.

쌀을 씻어 안치고 다른 버너위에 올린 프라이팬에 햄버거용 스테이크와 동그랑땡과 스팸을 넣어 굽다 어젯밤 남겨두었던 복분자술을 마셨다.

달짝지근한 그 술 조금씩 마시다 보니 병을 다 비워버렸다.

취가가 슬쩍 돈다.

그래도 걸을 수는 있지...


오다보니 양폭산장 아마 8-9년만이지 싶다.

단풍이 들었네...천불동계곡 사이사이 작거나 큰 봉우리 틈새에 삐져나온 나뭇가지에 붉고 노란 물이 들었네.

얼마쯤 가다 널따란 바위에 누워 잠을 청했다.

 

비선대.

배 맛이 나는 쮸쮸바를 사서 먹었다.

오늘은 동동주를 건너뛰고 대포항에 가서 회를 먹기로 했다.

여전히 사람이 많다.

광어회에 때깔고운 멍게, 오징어, 고등어가 푸짐하게 나왔다.

혼자 왔더라면 이리 차려두고 먹지도 못했을 식단이다.

소주 맛 또한 달다..

해는 저물고 다리는 뻐근한 통증이 느껴지고 피곤하기는 하나 기분은 그지없이 좋다.

해맞이 공원에 가서 바다도 보고 있다 거기서 아는 언니를 조우해 그 차에 탑승 서울로 돌아온다.

오늘 대청봉에서 본 그 아침 해는 내일이면 다시 서울의 아침을 열어줄 것이다.

다시 서울에서 살아가기.

설악의  그 해와 더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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