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기/산으로**가기

설악산 백담사-대청-소공원 061020

미라공간 2007. 2. 9. 23:18
 

061020

다시 설악으로 가다.

여지없이 밤잠을 설친 후 일어나 택시를 탔다.

동서울터미널에서 차표 한 장을 반환하고 일행을 만나 7시20분발 차에 오른다.

김밥과 떡을 나눠먹고 곧바로 부족한 잠을 보충하느라 눈을 감았다.

단풍이 얼마큼 들었을까 하는 생각, 그리고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하는 염려는 마음을 편치 못하게 한다. 산행을 별로 해본 것 같지 않은 일행 중 한분이 힘들어 하지 않을까 무리를 하지 말아야 하며 예상하고 있는 경로를 제대로 못 갈지 모를뿐더러 오세암에서 잘 수 없게 된다면 것 또한 문제다.

애써 걱정스러움을 억누르고 억지 잠을 청했다.


백담사 입구 용대리.

다시 이산에 오게 되었다. 가슴이 설레기 시작한다. 자잘한 바람에 가녀린 자태를 나풀거리는 코스모스 꽃이 피어있고 하늘빛이 창창해서 눈이 시릴 지경이다. 산이 내어놓는 향기가 가슴을 훑고 지나고 저마다의 눈 속에서 아름다운 가을이 그윽하네.


백담사.

예전에는 700원의 버스비에 아래 어디쯤까지만 차가 왔었는데 이제는 백담사 바로 앞까지 차가 간다. 여지없이 공사 중. 이제는 그만이라고 외치고 싶다. 어쩌자고 자꾸만 낯설게 바꿔 놓는 거야. 뭘 더 무너트리고 새로 지어야 하느냐고. 이제는 다듬고 손때 묻혀 보전만 하면 안 되는 거냐고 소리치고 싶다.

그 해 6월의 팥배나무 꽃잎은 다 어디로 갔을까?

물기가 말라버린 잎을 단 허한 그 나무아래 멀쑥한 빗질의 흔적.

한용운 흉상에 깃든 건조한 서먹함.

넓은 마당가에는 불가가 함께 탐방객들의 수선거림이 자잘하게 번져가고 있었다.

길고 따사로운 가을햇살이 머물러 있는 개울가 평상에 앉아 서울의 터미널에서 산 양주를 한잔씩 마신다. 우리대로의 산행의식인 셈이다.


이제 산행시작이다.

지금은 운영을 하고 있지는 않는 백담산장을 지나고 얼마쯤 가자 영시암.

간간히 물든 단풍에 일행은 카메라를 꺼내들고 촬영에 몰두하느라 걸음이 더디다.

길가 탁자에 앉아 미숫가루를 한 모금씩.

그 사이에 낮선 남정네가 하나 붙었네,

앳되고 여린 몸집에 눈이 선한 그 남자는 26살.

누구는 어린사람을 보면 부럽다 좋은 나이다 습관처럼 그러지만 나는 그러지 못한다.

그 시절을 회상하고 싶지도 않을 만큼 힘든 때문인지 모른다.

불투명하고 막막하고 온통 분노와 원망으로 덧칠이 된 그때.

 


       


 

예초에 정했던 오세암-마등령, 그리고 오세암-봉정암 코스를 접고 이곳에서 바로 봉정암으로 해서 소청산장까지 가기로 한다.

일행의 걷는 품새로 보아 너끈히 갈 수 있을 것 같은데다 봉정암에서 혹 잘 수 있다 해도 산장까지는 가야 할 것 같아. 배낭에 넣어온 고기안주와 술등을 절간에서는 마실 수가 없을 것이다.


수렴동 산장.

이곳이 몇 번째인지 이제 가물가물하다. 앞서간 중년부부가 미리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백담사 오는 차에서부터 안면이 있는 터다. 우리를 따라서 산행을 해야겠다고 하더니 절에서 술을 꺼내는 걸 보고는 마음을 달리 먹은 듯 앞서 갔던 분들이다. 따로 앉기도 그렇고 해서 옆에 앉았다. 막걸리를 서로 건네고 마시는 사이 젊은 친구가 머쓱한 몸짓으로 배낭에서 뭔가를 꺼낸다. “혹시 이거 드실래요?“ 전날 금강산에서 가져온 북한산 뱀술이다. 암구렁이 두 마리가 들어갔다는 표기가 되어있는 상아빛 술병. 호기심에 마셔본 술은 몹시 쓰고 독하고 묘한 끝맛을 남긴다. 다시 계곡을 따라 오르자 어느새 급경사가 나타난다. 몸이 점차 지쳐가고 있는데 봉정암이 쉬 나오지 않는다.


                                                   

   

      

 

봉정암 

이제 오늘 하루 산행이 끝이 보이는 듯하다. 전망 좋은 곳에 자리한 절의 마당가 난간에 서서 아래를 보자 석양빛에 물든 능선이 부드럽게 펼쳐져 있다. 꽤 많은 등산객들이 저녁공양을 기다리느라 여기저기 모여 있다. 물 한 모금마시고 우리는 다시 소청으로 향한다.

소청으로 가는 길은 더욱이 가팔라 걸음이 느려진다. 해는 이윽고 저물어 어두워지고 나는 귀를 곤두세운다. 이쯤이면 산장에서 두런거리는 사람소리가 날 텐데 하는 기대 때문이다. 그런데도 쉬 말소리는 들리지 않고 몸은 자꾸만 힘겨워진다. 왜 이 모양이지. 그 동안 한 달에 한번 산행을 하는 둥 마는 둥 했던 탓이려니 자책을 한다.

                                             


 

드디어 앞서간 사람이 산장이 다다랐음을 알려준다. 숨고를 새도 없이 산장지기를 찾았다. 예약 없이 온 터라 우선 잠자리걱정이 앞서서다. 그리고 평상에 짐을 풀고 바삐 저녁거리 준비를 한다, 가까운 샘을 새로 발견하지는 못했는지 샘은 지금도 멀다.  헤드렌턴을 하고 한참을 내려가서 만나는 샘가에서 쌀과 부식거리를 씻고 물을 받아 올라오니 웬 낮선 외국인이 일행과 함께 마주앉아있다. 자기네끼리 말이 통한다고 우리는 알아듣지도 못하는 영어로 한참을 얘기하는 통에 우리는 묵묵.

술 몇 사발에 밥까지 먹고 나니 잠시 잊었던 고단함이 밀려왔다.  

1인당 7000원씩을 지불하고 들어간 온돌방에서 밤새 잠을 뒤척였다. 너무나 더워 잠을 제대로 이룰 수가 없었다. 누군가 나가느라 문을 여닫는 사이 끼쳐오는 찬바람이 너무나 고마웠다. 역시나 더워서 인지 들락날락하는 움직임이 계속 이어졌다. 침낭을 들고 밖으로 나갈 걸 하는 생각으로 갈등을 하다. 이렇게 더울 줄 알았으면 오리털침낭도 가져왔는데 5000원짜리 냉방에서 잘걸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새벽녘쯤 잠시 잠을 자기는 했을까.

일출을 봐야한다면 깨우는 통에 밤새 열기에 곤혹을 치루고 밖으로 나오니 바람이 차다. 다시 중청으로 향한다. 어젯밤별이 없었던 하늘은 지금도 온통 흐리기만 하다. 일출보기는 틀린 것 같아 가고 싶지는 않았지만 혼자 포기할 수는 없어 따라 나섰다. 걸어가는 내내 구름에 갇힌 하늘은 벗겨질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대청에 모인 많은 사람들. 해가 뜨는 예상시간이 지났음에도 사람들은 쉬 단념하지 못하고 정상의 바위를 딛고서 서성거렸다. 아주 잠깐 누군가의 고함소리에 동쪽을 바라보니 구름사이로 해가 보였다 다시 구름에 덮여지고 말았다. 근사한 운해도 역시 없다.   

 

 



  

 

아침준비를 하느라 두 사람이 샘터로 간 사이 두개뿐인 커피를 물을 빌려 마셨다. 산속에서는 뭐든 맛있다지만 숭늉 맛처럼 커피 맛도 참으로 각별하다.


소청봉

예전에는 이곳에 매점이 있었는데 중청산장이 생기고부터 없어졌을까. 소청에서 바라보는 등성이의 주목들은 여전히 낮은 자세로 늘어서 있다.

이제부터는 희운각으로 내려가는 내리막길이다. 지금까지 걷히지 않는 운무가 찬기를 품고 솔숲사이를 휘감아 돈다. 희운각이나 양폭에서 오는 건지 밤새 버스에 실려 온 건지 꽤 많은  사람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휘운각

올 여름 폭우에 산장을 건너는 다리가 저만치 떠내려 간 것이 보인다. 나름대로 튼튼히 지었을 철재다리가 맥없이 휩쓸려 간 것을 새삼 물의 위력이 대단함을 느낀다.

개울가에서 비로소 세수를 하고 양치를 한다.

산장에서 주문해 커피를 마시다 실은 아침에 몰래 마신 사실을 실토한다.

한바탕 미안한 웃음.

 

 

                                             

 

양폭산장.

이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해서 가져온 라면을 끊이고 다시 막걸리를 한 사발씩 마신다. 어디에 앉아 뭐를 먹든 즐거움이 한바탕.

비가 조금씩 내리나 싶더니 빗방울이 굵어졌다. 침낭카바를 씌우고 방수자켓을 입고 내려오는 동안 천불동계곡의 절경에 걸음은 자주 더디어 진다. 카메라를 꺼내고 집어넣기를 여러 번 


비선대

비선대에 다다르자 거친 산길은 이제 끝이라는 말로 일행을 위로한다.

이제부터는 전에 내가 하던 대로 배맛아이스크림을 팔뚝에 문지르고 걷다보면 여기저기 주점이 나오고 머잖아 거대한 불상이 있는 신흥사에 다다른다.

젊은 친구는 이곳에서 하루를 묵고 다시 마등령으로 가서 공룡능선을 타야 한다. 헤어지기가 섭하다해서 이별주로 누룽지막걸리로 건배를 한다.

신흥사에 도착하기도 전 하늘을 옅게 물들이던 석양빛이 사그라지고 어둑해졌다.

힘겨웠을 산행을 힘겨운 내색도 없이 잘 해준 일행에게 새삼 박수를....


우리는 이제 다시 강릉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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