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순례/국토종단[해남-고성]

국토종단-9차 071103

미라공간 2007. 11. 14. 00:36


071103

5시에 일어났는데 늦어지게 되었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한 시간은 더 일찍 서둘러야했었다.

   

 

                                    

 

남쪽으로 가는 길. 짙게 깔린 운무 속의 고속도로위를 달린다. 이 년 전 잠깐 보았던 황산을 지나는 듯 그렇게 뿌옇게 잠겨있는 겹겹의 산들을 바라보면서 감탄사를 연발했다.

시간이 지나자 이윽고 아침 해가 솟아오른다. 계란의 진노란 자위 같은 해가 어느 야산위로 불끈 솟았다. 다시 감동의 순간을 만끽한다.

 

       

      

 

교대로 오는 플언니와 산에의 전화.

몇 십 분이 아니라 한 시간 이상은 늦을 것 같아 기다리지 말고 먼저 출발하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침거리를 내가 가져가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코펠, 버너며 국거리를 내 배낭 속에 넣어 와서 아침을 같이 하기로 한 때문이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괴산으로 들어서가는 데 오른쪽으로 저수지가 보였다. 이런... 물안개가 너른 저수지를 온통 잠식하고 있었다. 산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고 한 곁에는 노란빛 은행나무가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가을이라서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이 가을이 주는 선물. 마다할 수가 없었다. 차를 세웠다.

 

 

     


괴산의 양곡저수지를 지나고 미원면을 지나 지난번의 종착지 경상도 상주시 화북면 용하삼거리를 가는 동안 혹 우리 팀을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봤다, 그래서 유심히 밖을 살피고 갔는데 낮설어 보이는 남자 뒤에 필례님의 얼굴이 퍼뜩 눈에 들어왔다. 유리창을 손바닥으로 퍽퍽 치면서 “차 세워야 돼. “라며 급박하게 목소리를 높였다.

맞은편의 공터에 차를 세우자마자 미안한 마음에 성급히 음식준비를 했다. 코펠의 물이 끓기를 기다려  어묵재료를 넣고 반찬을 꺼내놓았다. 플언니가 사온 김밥과 얼마 전 보보스님의 생일 때 받은 무지막지하게 큰 케이크와 양주를 꺼내놓자 금세 앉은자리가 푸짐해 졌다. 그야말로 딱 한잔씩만 이라고 했던 양주는 결국 바닥을 보이고나 서야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났다.

 

다시 한 달만의 종단길. 첫걸음을 디딘다. 부쩍 추워진 날씨 속. 찬 공기가 뺨을 할퀴고 지난다. 움츠려 드는 어깨. 그러나 몇 걸음 가지 않아 폐부 깊숙이 심호흡을 하고 어깨를 편다.


걸어가는데 맞은편에서 우리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 바라보니 낯선 두 분이 도보여행 하는 중이냐는 물음을 하신다. 그렇다고 하자 아주 반가운 기색을 하신다. 인사를 나누고 같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흡사 국내가 아니라 국외에서 마주친 것처럼 들뜬 기분이다. 그 분들은 삼일 째 걷고 계신다고 한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다음 주는 해남에서 어디까지 걸어가신다고 함께 하기를 권하셨다. 그럴 시간이 있으면 좋겠지만 아쉬움을 표하고 작별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너른 강을 건너가자마자 나오는 한들휴게소. 당연히 앉아있을 줄 알았던 남정네들이 보이질 않아 궁금해 했는데 산으로 향하는 곳에서 왁자한 말소리가 들리기에 돌아 봤더니 영업용 대형냉장고를 나르고 있었다. 여섯 명쯤이 붙었는데도 워낙 무거운 것이라 그런지 움직이는데 애를 먹는다. 사람이 귀한 시골길에 지나는 우리에게 힘을 빌어달라고 했었나 보다. 그리고는 그 보답이라며 무슨 약초엑기스를 가져와서 물에 타서 나눠준다. 좋은 것이라 하니 마다할 이유가 없어 마셨는데 적당한 단맛과 쌉싸한 한약내가 나는 것이 내 입에 잘 붙는 걸 보니 괜찮은 음료인 듯 해 거듭 마셨다.

잠시 앉았다 일어서려는 일행들은 다시 팔을 걷어붙였다. 뒤쪽에 날라야 할 물건들이 많다고 하는 말에 그 쪽으로 가더니 이번에는 단지를 날랐다. 복분자니 무슨 약초니 버섯절임등이 들어있는 단지들은 보기보다는 꽤 무거워 너른 천에 싸여 네댓 명이나 잡아서 옮길 정도였다. 몇 차례 크고 작은 단지며 잡다한 것들을 뒤편 창고로 나르는 수고를 하고는 저마다 음료수병에 술이며 약초엑기스를 받아들고 왔다. 오늘 밤은 좋은 술맛은 실컷 보겠다 싶다.

 

 

                                    


언젠가부터 그러니까 그게 아마 10년 전부터지 싶다. 시골길에 부쩍 많아진 주유소. 수입이 다소 늘고 전국적으로 차량보유대수가 늘어나면서 생겨난 낯선 풍경이었다. 차가 그다지 많이 다니지도 않는 한적한 길가에는 큼직막한 간판을 전면에 세우고 원색의 페인트를 뒤집어 쓴 건물들이 만국기를 휘날리며 무뚝뚝하게 자리 잡아 가고 있었다. 저리 경쟁적으로 급작이 많아져서 제대로 운영이 될까 싶었다. 그리고는 다시 몇 해 전부터 폐업을 한 주유소들은 종종 보게 되었다. 지나갈 적마다 거대한 건물 앞에 뎅그러니 놓여있는 길다란 주입기들이 볼썽사나웠는데 이곳은 한술 더 떠서 검은색 하우스비닐을 씌워 놨다. 누가 보더라도 길게 넓적한 것이 얼핏 검은 관이 세워져 있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나조차도 섬뜩함을 느꼈으니 말이다.

 

 

     


시골길을 걷다보면 가지게 되는 즐거움이 있다. 어쩌다 마주치게 되는 저수지다. 규모가 작던 크던 바라보노라면 소소하면서 시선을 끄는 풍경이 있다. 아침이면 물안개를 피워 올리고 가끔은 물속에 잠겨있는 나무가 운치를 더하고 근사한 반영이 있어 카메라에 담는 기쁨을 맛보게 해준다. 오늘 아침의 괴산 양곡저수지 또한 가슴을 철렁거리게 만드는 지극한 아름다움 이였다.

 

 

  

 

서투른 솜씨로 이발을 한 듯 벼 밑동가리만 남은 빈 논의 모습은 황망하다. 바라보는 동안 가슴에서 온기가 빠져나가는 듯 서늘해온다. 가지런히 서로 기대어 세워둔 낟가리는 바람이 조금만 세차게 불어도 휘청거릴 듯 가벼워 보인다. 황금빛 물결이 출렁이던 들판의 풍성함은 아득한 옛일 같다. 흡사 유년기의 내 기억처럼 섭섭하고 아득하고 아쉬움이 가득하다. 두 번 다시는 손에 잡힐 수도, 돌이킬 수도 과거의 어느 날처럼.

그러나 빈 들을 채운 흙들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다가 올 겨울을 견디어 내고 이듬해 봄이 오면 다시 온 힘을 다해 뿌리를 보듬고 양분을 보태어 새싹을 키워낼 것을 알고 있다.   

기온이 점점 올라간다. 겉옷을 벗었다. 화양계곡의 입구다.


어디서 점심을 먹나 두리번거린다. 괴산에서는 올갱이국이 유명하다. 오래전에 먹어 본 그 맛을 다시 기억해 낸다. 연하게 푼 된장국물에 넣은 자잘한 올갱이. 흙과 이끼의 향이 어우러진 깔끔한 맛이었는데 파대신 부추가 들어갔던 걸로 기억이 났다. 주위의 상가에서 물어보니 삼거리 쪽의 토속정이라는 곳이 가장 괜찮다고 하네. 그 곳으로 들어가서 자리를 잡자마자 누군가 다시 소주타령이다. 참이슬과 시원소주 중 무얼 마실까 의견을 나누다 결국 둘 다 마시게 된다. 게다가 좀 전의 그 약초주까지 곁들인다.

오늘 먹은 올갱이국은 작은 올갱이를 계란 물에 입혀 역시 된장국에 넣어 익히고 이런저런 야채를 넣어 끓인 것인데 맛이 없지는 않았지만 예전과 같은 그런 깔끔하고 개운함이 덜해 아쉬웠다.

 

  

 

 

청천시장. 말쑥하고 폼 나게 현대식으로 한답시고 지붕을 얹고 가운데 통행로며 간판이랑 외양을 정비한 시장이다. 나는 그런 것이 늘 불만이었다. 왜 자꾸 후딱 바꾸려고만 하는지. 시골은 시골스러워야 한다는 게 내 지론이다. 외형만 임시방편으로 바꾸지 말고 지방색에 맞게 자연스레 주변과 어우러지게 만들어져 가면 안 될까? 획일적인 간판. 규격화된 문짝, 유난스레 컬러풀한 페인트칠. 어디서 베껴 온 건축양식인지 알 수없는 모습들. 그냥 구부러지고 적당히 뒤틀어진 채 손때가 묻은 대로 깨끗이 잘 다듬어 놓으면 안 될까? 오래 묵은 집들이 보기에 구질하고 흉물스럽게 보이는 것은 제대로 가꾸지를 않아서가 가장 큰 이유인걸로 생각된다. 이런저런 일에 바빠서 그럴 여력이 없다고는 하지만 가까운 일본의 농가만 해도 작으나마 뜰을 가꾸고 농기구며 잡다한 것은 구석에 잘 정리해서 놓아두고 주변을 깨끗이 한 것이 인상에 남았다. 스쳐 지나면서 보면 주변의 풍광에 비해 도드라져 보이지 않고 잘 융화가 되어있는 자연스러움이 있었다. 유휴인의 주변 상가도 마찬가지다. 유난스러운 곳이 없이 고만고만한 높이의 건물과 담장과 잘 가꾼 정원이나 화분으로 인테리어를 하고 작고 특색있는 간판을 하고있어 푸근하고 정겨워 보였다. 이제 이런 곳도 서울 인사동의 구석구석에 박혀있는  민속가계처럼 토속적 옛스러움을 살려 놓으면 안 될까.

 

 

  

 

배가 부른데다 1시를 넘어서자 기온이 더 높아졌다. 노란색 소국이 길가를 메우고 피어있다. 유난히 샛노란 색채는 바라보는 이의 체력을 북돋아 주는 기를 발산하는 듯한 생동감으로 충만하다.

쉬어가기로 한 일행이 한가한 식당 앞의 의자에 앉았다. 뭐하는 사람들인가 해서 계단위의 식당에서 할머니 한분이 기웃거리신다. 영업하는 집 앞에 부산스레 앉아있는 것이 미안해진 남정네 둘이서 뭐라도 사야한다며 가더니 과자봉지와 술을 손에 들고 온다.

 

 

  

 


 

화양계곡으로 들어가는 초입이다. 완연한 가을 속. 단풍 길을 걸어가자니 무거웠던 걸음이 다시 가뿐해 진다. 무엇이라 이름 붙여진 전망 좋은 곳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저마다 사진으로 담아내느라 바쁘다. 이런 절경들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걸을 수 있다니 나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그래서 언제나 감사히 살아야 한다는 것에 다시 생각이 미쳤다.

 

 

  

 

화양계곡 주차장에 이르자 가을저녁 기울어 가는 해가 단풍나무 사이로 막바지 햇살을 쏟아 붓고 있다. 

 

 

 

핏빛단풍. 바라보노라면 불현듯 가슴으로 차오르는 광기. 불꽃처럼 뜨겁게, 독약처럼 은밀하고 위험하게, 미친 듯 펄떡이는 본성을 드러내는 듯 얼굴이 달아오른다.

 

 

  

 

잘 꾸며진 너른 공원이 나타났다. 대부분이 주차장 쪽으로 내려오는 사람들이다. 오늘하루 얼마나 많은 인파가 이곳을 휩쓸어 갔을까? 이 계절이 아니라면 언제 이런 정경 속을 지날 수 있을까? 그 들도 저마다 그런 생각이었을 것이다. 수북한 낙엽더미를 일부러 소리 내어 밟고 가는 선의 뒤태에서 가을의 정서가 새삼 느껴진다.

 

 

                 


긴 공원을 벗어나자 다시 선유동계곡으로 접어든다.

저마다 이름이 주어진 기암들을 지나면서 탄성을 지른다. 물빛이, 그 물에 잠겨있는 산빛이, 구름빛이 모두 경이로움이다. 세세히 보고 느끼느라 걸음은 더욱이 더디어 진다.

산속의 해는 더욱 빠르게 기울고 있다. 금세라도 어둠이 덮쳐버릴 듯한데 갈 길은 아직 꽤 남은 것 같다. 시내버스 시간에 맞춰 서둘러야 할 것 같은데 길가에 퍼져 앉아 간식을 마저 먹는다. 계곡도 멀어진 산길. 일어서서 저마다 바삐 걷는다.

 

 

  

 

앞서가던 산에가 “저기 기억 나냐? “하며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아!!! 작년에 솔트렉 챌린져팀의 단합대회가 있었던 그 운동장 이였다. 그리고 아래쪽 야영장이 보였다. 이곳을 지나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작년 산에가 쳐 놓았던 텐트에서 아이들과 함께 자고 산에는 내 비박용 텐트에서 자기로 했었는데 술에 취해서는 자리를 못 찾아들어가 평상에서 웅크리고 있는 걸 본 적이 있었다. 그 얘기를 하면서 새삼 감회에 젖었다. 그리고 그날 일이 오롯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불꽃축제, 늦도록 이어진 노래자랑. 아이들의 분주한 소리, 다음날의 축구시합, 응원하던 소리들, 숨은 선물 찾기, 그리고 누군가가 준비해 온 음식들 중 유독 입에 맞았던 열무김치. 


산길을 벗어나자 차도가 나타났다. 조금 더 진행을 하다 적당한 곳에서 민박을 정해야 했다. 어느 식당 앞에 서서 방이 있는지 물어보고 그 곳으로 정하기로 했다. 방이 나란히 붙어있질 않아 불만스러웠지만 그런대로 주인의 서글서글한 성품이 맘에 들어 자리를 잡기로 했다. 인심 좋은 주인아주머니가 덥석 내준 차로 몰고 남정네들이 빠져나간 뒤 둘러보았는데 샤워장이며 화장실 상태가 심각했다.

오늘 저녁메뉴는 애초의 삼겹살과 떡볶이에다 버섯전골이 더해졌다. 저녁식사를 겸한 술자리가 길어지고 있다. 나는 역시나 술 생각이 없고 배가 적당히 불러오면서 잠이 오기 시작한다.

빠져나와서 여자 방으로 정해진 곳으로 들어갔는데 이불이 하나도 없다. 옆방을 노크를 했는데 아무 기척이 없어 문을 열고 들어가 이불을 끄집어 내왔다. 깔고 덮고 잠을 청하려 했는데 쉽지는 않다. 방바닥이 미지근한데다 이불에서 나는 좋지 않은 뭔가에 찌든 역한 냄새가 났다.  어쨌든 잠을 자기는 해야 해서 방한자켓을 껴입고 누워 잠들기 위해 애를 썼다.

 

 

▶날    짜 : 2007년 11월 3일(토요일)

▶간    곳 : 경북 상주시 화북면 용화삼거리~충북 괴산군 청천면 송면리

▶시    간 : 9시간 42분 (휴식 및 중식 2시간 56분 포함)

▶거    리 : 27.3km [누계거리 : 433.7km]

▶동 행 자 : 플러스, 산그리고, ⓢⓤⓝ, 보보스, 필례, 허빵, 강산에

▶소요비용 : (30,000원)

 ▶코    스 :

ㆍ07시 12분 : 용화삼거리 도착(07 : 33 출발)

ㆍ08시 13분 : 공림사 입구

ㆍ08시 43분 : 상신지구(조식 및 휴식 / 09 : 35 출발)

ㆍ10시 20분 : 서울에서 온 순례팀 만남(10 : 26)

ㆍ10시 20분 : 평단마을

ㆍ11시 00분 : 강평교

ㆍ11시 03분 : 한들식당(11 : 33 출발)

ㆍ12시 02분 : 환경문화전시관

ㆍ12시 17분 : 청천삼거리 토속담식당(중식 13 : 00 출발)

ㆍ13시 32분 : 금평삼거리

ㆍ14시 10분 : 도원삼거리

ㆍ14시 15분 : 무릉도원식당(휴식 28분)

ㆍ15시 05분 : 화양계곡삼거리(화양1교)

ㆍ15시 18분 : 8각정휴게소(휴식 7분)

ㆍ15시 42분 : 화양2교

ㆍ16시 32분 : 중간휴식(16 : 48)

ㆍ17시 05분 : 자연학습원삼거리

ㆍ17시 15분 : 민박집(명암식당/슈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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