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1229
쉬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럴만한 여러 가지 이유를 굳이 든다면 ...
커피를 한잔이상 마시기도 했고 오후에 녹차를 마신 것과 옆에서 자던 애의 이불 속 긴 통화 때문이기도 그리고 건너편 사람의 기침소리 아니면 어수선한 내 머릿속 탓인지도 몰랐다.
잠을 들려고 오랜 시간 뒤척이다 어찌 어찌 잠이 들었을까 싶었는데 기상을 알리는 음악소리가 방안을 소란스럽게 하는 새벽.
미적거리다 안 되겠다 싶어 비틀거리며 일어나 핸드폰 전원을 켰다.
6시가 조금 넘고 있었다.
7시 46분
해는 아직도 없다.
불그스름한 여명이 산등성이에 옅게 걸치고 있을 뿐이다.
바깥을 볼 수 있을까 해서 창 옆에 자리를 잡았지만 큰 유리창에는 반사된 실내등만 가득 떠있다.
햇살을 잠시 본 듯 했다.
고개들어보니 멀리 산등성이에 불꽃이 타고 있었다.
구름 한 가닥 걸치지 않은 둥근 붉은 해가 불끈 일어서고 있다.
서서히 산이 깨어나고 있었다.
어제 내린 눈발을 다 떨쳐낸 나무와 시린 눈을 이고 있는 음지의 나무와 어수선한 황량한 잎사귀를 달고 있는 단풍나무 그리고 계절을 잊은 파릇한 양지쪽 잔디가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산을 바라보고 있는 사이
이곳에서 오랫동안 머물고 싶다는 가망 없는 바램이 얼토당토않게 튀어나온다.
벌거벗은 음지의 나무사이를 메우고 있는 희끄무레한 눈과 바람이 흔들어대는 메마른 나뭇가지를 바라보면서 나는 좀 더 아파해야 할 것이다.
가슴을 가르고 바람의 통로를 뚫어 내가 만들어 가는 이 고통의 정체를 걷어내야 했다.
그리고 시간이 가는 만큼 저 아래 세상은 내가 돌아가는 시점에 이르러 얼마만큼 달라져 있기를 바라는 기도를 해야 할 것 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