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부터 날씨가 많이 풀렸다.
아침 8시경에 일어나 나물5가지와 산적과 동태전과 떡국을 끓여서 늦은 아침을 먹고 흰색 옷 골라 세탁기 돌리고 원두커피를 옅게 뽑아서 잔 가득 마시고 침대에 누웠다.
괜찮은 외국영화 한편을 해치우고 잠깐 잠이 들었다.
다시 일어나 밥통에 쌀을 씻어 넣고 취사버튼을 누르고 들어왔다.
나.
지금 수현이를 비롯 어제 혹은 그저께부터 설 음식준비에 종종걸음을 쳤을 여자친구들 약 올리는 건가?
ㅎㅎ
어저께 밤. 수현이 글을 보고 빙그레 입가에 미소가 머금어 졌다..
그 많은 갖가지 준비들과 음식의 양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리고 남자들이 해 줄수있는 것이라는 게 얼마나 적은 부분이라는 것을.
오랜동안 보아왔던 맏며느리셨던 우리엄마.
출산직후를 뺀 대부분을 직장일에 장사일에 고단함에도 명절이 되면 대청소를 비롯한 모든 준비를 하셔야 했다.
엄마를 도와줄만한 다른 며느리가 없어 늘 혼자 좁고 불편한 부엌에서 어정쩡하게 허리를 굽혀 일을 하면서 삼춘들에게 언제 색시를 데려 올꺼냐는 푸념을 간혹 토해내고 하셨지.
내가 커서는 좀 거들기도 했지만...
수도가 없었던 그 당시 며칠 전부터 엄마는 명절때 쓸 물을 확보하는라 밤잠도 설치며 장독이며 커다란 플라스틱 통에다 가득가득 물을 채워야 했다.
명절 이틀전 퇴근하고 오시면 늦은 시간 시장을 보고 긴 언덕길을 가쁜 숨을 몰아쉬며 힘겹게 올라와 무거운 시장보따리 끌러 놓자 마자 불려놓은 쌀을 지고 다시 그 길을 내려갔다.
줄이 끝도 없이 늘어선 방아간에서 오랜시간 기다려 만든 가래떡 대야를 다시 머리에 지고 집으로 돌아오시면 새벽까지 떡을 썰어야 했다.
다음날 부터는 하루종일 기름냄새가 진동하는 부엌에서 헤어나오질 못 하셨다.
석유로 사용한 뭐더라? 석유풍로던가?
거기다 머리숙여 심지를 올렸다 내렸다 끄으름을 맡아가면서 지금보다 훨씬 양도 많았던 명절음식을 하느라 하루가 모자랐다.
부엌이 비좁아 한 데에다 제수용그릇을 비롯한 여러가지를 가득 쌓아놓고 뜨거운물 받아다 시린손 담아가면서 그릇을 닦고 음식장만에다 식구들 3끼밥까지..
아버지와 삼촌들과 내 남동생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하나있는 TV앞에 앉아서 이런 저런 이야기와 먹거리로 시간을 보내고 새해아침에는 밤을 깍고 제사상에 음식을 차려주시는게 전부였었다.
설 아침.
차례가 끝나고 아침식사가 끝나면 설겆이로 한참을 쪼그리고 계시다가 새해빔으로 갈아입은 식구들의 내복을 비롯해 엄청나게 많은 빨래를 큰 대야 가득 담아두고 빨래판에 문지르고 계셨다.
비단 우리엄마뿐만은 아닌 대한민국에서 명절을 치루는 여느 집 며느리들은 대부분이 그러 했으리라.
지금은 그나마 사정이 많이 나아져서 입식부엌에 손만 ?치면 곧바로 뜨거운 물까지 콸콸나오고 다시 손목한번 살짝 비틀면 파란 불꽃이 펄펄 솟구치는 가스랜지가 있어 많이 수월해 졌지.
뭐 요즘은 만들어 놓은 산적이랑 전이랑 손질 잘한 생선에다 이쁘게 잘 썰어논 쌀떡을 사다가 쓰기도 한다.
게다가 음식양도 퍽 줄었지.
그래도 며느리들은 고달프다.
어느 식구 많은 집은 방안 가득 남자들의 고스톱판에 밤 늦도록 음식도 해다 바치기도햐야한다.
담날이면 새벽에 일어나 다시 그날 몫의 음식만드는 일로 분주하지.
남자들은 늦게 일어나 옷 갈아입고서 탕이며 음식담는 것이 이리 느리냐고 뒷통수에다 대고 성화를 부린다.
나 이렇게 느긋하게 앉아서 이렇수 있어서 좋아해야 하는건지...
어제 오후 며칠전부터 고단한 설 준비에 바쁘셨을 엄마와 긴 통화를 했다.
가슴이 찐해져 왔다.
이런 저런 사정이 있어 "못 갑니다"소리를 진즉 하지도 못하고...
재작년인가 설 음식준비를 거들던 내게 "네가 와서 정말 편하다"는 말을 하셨던것이 ..기억이 나 미안한 마음에 슬그머니 눈가에 습기가 올라왔다.
다음 추석에는 ... 팔 걷어부치고 지금이나 그때나 혼자 하시게 될 그 일을 도 맡아 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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