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0603
시외버스가 남설악매표소에 바로 내려주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 이였다.
동서울에서 불과 3시간 만이다.
우~ 빨리 왔네.
오색은 3번째.
신발끈을 다잡아 매고 산행시작.
바이오리듬을 찾아보니 오늘 내 신체지수는 -81, 감성지수 -62, 지성지수+45
몸 컨디션이 안 좋아 힘들어서 쩔쩔맬지도 모른다.
시간단축하기 위해 무리하지는 말아야지.~
뉴스에서 듣자니 기온이 30도.
언제 수해가 났을까?
헬기로 공수해온 돌무더기들이 군데군데 길을 가로막고 놓여있다.
좀더 올라가자 공사하는 인부들이 길을 만들고 있다.
아래로 쓸려 내려간 흙이며, 돌덩이를 다른 곳에서 실어와 산의 일부분으로 메우고 있는 것.
정말 덥다.
그리고 쉬 지친다.
숨도 가쁘고, 다리도 후들거려 오고, 어지럽기까지...
작년과는 사뭇 다르다.
점심을 먹는데 다람쥐가 맴돈다.
등산객이 던져주는 먹거리에 익숙해진 이놈은 나를 계속 흘끔거리다가 바위를 짚고 있는 내
손가락을 작은 이빨로 슬쩍 물고 갈 만큼 대담하다.
먹이를 달라는 시위인지, 아니면 손가락 끝에 먹이가 있는 걸로 착각했는지..
5시 반경에 대청봉에 다다른다.
여러 번 왔었지만 오늘처럼 시계가 좋은 날은 첨이다.
이곳에서 비로소 나는 바다를 본다.
한번도 보지 못 했던 바다, 그리고 사람 사는 동네.
왼쪽 끄트머리에 울산바위, 바로 앞에 용하장성, 그리고 공룡능선.
바라보는 내내 가슴이 벅차 올랐다.
예전에 없었던 것이 별안간 생겨난 것 같은 놀라움이다.
중청을 지나고 천불동계곡으로 발길을 돌렸다.
아마 8년만 이지.
김밥은 다 쉬어서 버리고 먹을 것도 없이 이곳을 지나서 다시 이곳으로 내려가던 적이 있었
다.
무식한 리드를 따라 회원들이 몹시 고생했었다.
비싸다 해서 음료나 크랙커도 사주지 않았었다.
아침7시 소공원에서 올라와 대청봉을 밟고 당일 다시 소공원으로 되돌아가는 끔찍하고 무식
하고 무리한 산행을 했다.
희운각산장 바로 위 계단.
미처 해가 떨어지기 않은 하늘에 성급하게 상현달이 떴다.
선하고 수줍은 미소를 띈 새색시의 환한 얼굴이다.
희운각 산장.
벌써 7시다.
몇몇의 사람들이 각기 식사를 하고 있고, 한편에서는 술자리를 벌이고 있다.
도착이 늦은 탓에 어두어져서야 밥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밥을 하고 있는 동안 벌써 취기가 있는 옆자리 거제도에서 온 부부가 소주를 권한다.
마다할 내가 아니지.
비싼 소리를 홀짝 마시고 답례로 안주를 가져다주고 몇 마디 건네고 ....
내가 묵었던 여러 산장 중에서 가장 편한 잠자리다.
주중이라 사람들도 얼마 되지 않아 공간이 널 널하고, 알맞게 따뜻한 온도에다, 파스냄새를
빼고라면 악취도 없었다.
게다가 어젯밤 못 잔데다 이리 피곤하니 아마 잘 잘 수 있을 거야.
그러나 기대는 이내 무너졌다.
코고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즈막하게 들리는 걸 빼고라면 조용한 심산의 밤에 나는 또다시
쉬 잠들 수가 없었다.
1, 2, 3, 4, 5, 6...
100, 99, 98, 97, 96...
양1마리, 양2마리, 양3마리, 양4마리,...머릿속에 양떼들이 꽉꽉 채워졌다.
자자, 자자, 자자...
자야돼, 자야돼, 자야돼... 안 그럼 낼 공룡 탈 때 힘을 못 쓸 거야.
옆에 어느 여자가 높은데서 떨어졌나봐?
아마 머리를 다쳤나보다 ..토할 것 같다고 남자를 깨운다.
부스럭거리며 일어나더니 층계를 내려가 바깥으로 나간다.
다시 들어와 남자랑 얘기를 하기 시작한다.
어깨어디, 등 쪽, 그리고 팔 어딘가가 아프다고 보채기 시작한다.
남자가 아직 낮은 목소리로 그런다.
"다들 자니까 말소리 죽여.."
내 생각- 그래 그러잖아도 나 당신 땜에 더구나 못 자고 있어.
그들이 잠잠해 지자 옆에서 누군가 다시 부스럭거리더니 물통을 입에 대고 마신다.
그 소리가 끝나고 나자 오른쪽여잔지 남자진 무지하게 큰 코골이를 한다.
발로 차고 싶지만 참았다.
그래도 난 자야돼.
코고는 소리에 맞혀 숨을 쉬기 시작했다.
코고는 소리정도야 무시하지 뭐...
아래층 젊은 부부사이에서 자는 아기가 잠결에 보채는 소리가 들린다.
토닥거리면서 아기엄마가 뭐라 몇 마디.
왼쪽의 남자.
자다 일어나 두어 번 벌컥거리며 물 마시던 그 남자.
일어나서 내 발치께를 지나 아래로 내려간다.
무언가에 부딪치는 소리, 그리고 문열고 나가는 소리.
....
다시 어느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일어나"
여자- "좀 더 자자"
"5시야 벌써 날이 밝아오잖아. 얼른 준비하고 가자."
나- 뭐야? 벌써 일어날 시간이야?
아침이 됐어?
으악...!
04060
이른 새벽.
산에서 먹는 숭늉은 정말 맛있다.
스푼대신 나무젓가락을 붙여서 입에다 대고 누룽지를 떠 넣었다.
그리고 향기로운 커피 한 잔.
7시가 되어 가고 있다.
가야지...
공룡능선 초입이다.
처음부터 급경사.
올라서자 다시 내리막.
이렇게 9개봉을 오르락내리락해야 한다네.
어제 대청봉에서 보았던 근사하나 칼날처럼 세워진 봉우리를 다 넘어야 한다니.. 우--
그래도 군데군데 밧줄이 있어 위험하지는 않네.
몇 개의 굽이를 지났을까?
시야가 트이는 어느 곳에서나 절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이래서 그리 많은 사람들이 공룡능선을 들먹였구나.
오르막을 디딜 적마다 호흡이 가파왔다.
지난 날. 내게 겁을 주었던 여러 사람들이 음성이 느꺼졌다.
이 정도야...
40대 중반의 어느 남자.
불현듯 내게 청을 한다.
"암벽 함 타시죠? 공룡 왔다가 저기 안 올라가면 평생 후회합니다."
잉? 저 꼭대기를 가자고?
근접할 수 없는 두려움처럼 버티고 선 바로 앞 봉우리를 가리킨다.
"어떻게 가요? 우와? 전 못해요." 도리도리..
"정말 기가 막혀요. 일생에 한번이에요. 올라가 보면 저한테 감사하실 겁니다."
....
위험해 보이는데...
"제가 책임집니다"
언제 봤다고?
내게 불상사가 생긴다면 어떤 방식으로 책임질 건지 알 수는 없지만 배낭을 벗었다.
가보지 뭐.
진땀난다.
안전장비도 하나 없이...
암벽을 못 탈 것도 없지만, 간간이 비슷한 걸 해 보긴 했지만 여기 정말 아찔하다.
첫발 부터 두려움이 밀려왔다.
근데 조금 오르자 아래만 보지 않는다면 정말 수월했다.
정말이지...
일생에 한번 볼까 싶은 광경이 펼쳐졌다.
모든 것의 중심이 내게로 다가왔다.
어느 산봉우리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감동이다.
뒷쪽으로 어제 올랐던 대청봉과 중청봉이 나란히 서있고, 용하장성, 귀면암, 먼데 울산바위, 그 너머 바다, 그리고 빙 둘러 이름을 알 수 없는 갖가지 봉우리들이 뭉퉁거리거나 뾰쪽하게 날을 세우고 서있었다.
아무에게 나가 아닌 선택된 몇에게만 허용되어지는 그런 특별함. 숭고함. 전율이 느껴
졌다.
그가 이끄는 대로 어느 비스듬한 바위에 누워 아래를 보자 수백 미터는 됨직한 직벽이였다.
급속한 두려움과 함께 서둘러 눈을 돌렸다.
현기증이 덮쳐왔다.
이곳에서 더러 누구는 몸을 날리고싶은 충동을 가졌을 게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실천을 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다른 세상으로 간다.'
이 벼랑에서 사람들은 현실에서의 자신의 한계를 가져다 놓을 것이다.
한계점.
물러설 곳이 없다는 절망. 깊은 슬픔.
그래서 나도 슬프다.
그곳이 '1270고지'라고 한다.
결국 그분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게 됐다.
그가 내게 손을 내민 것은 기쁨과 경이로움과 자신이 체험한 감동을 함께 나누기 위한 소소
하나 큰 친절.
마등령이다.
11시50분 경.
드디어 공룡의 등을 넘어 왔다.
군데군데 나무그늘에 자리한 사람들이 점심을 들고 있다.
메뉴는 아침에 한 밥 한 덩이와 육개장, 그리고 오이. 열무김치.
국에 만 밥을 젓가락으로 떠먹고 나자 뿌듯함과 포만감이 밀려왔다.
재킷을 바닥에 깔고 배낭을 베고 모자를 얼굴에 덮고 누웠다.
~~~~
1시가 다됐다.
다시 가야지.
마등령에서 비선대로 내려가는 길도 만만치는 않다.
급경사에다 마석이 촘촘히 깔려 있어 미끄럽다.
위태하게 밟아가다 보니 어느 시점부터 산길을 지우고 수북하게 쌓인 낙엽이 깔려있다.
가을 속이다.
그리고 시야가 트인 곳 어디서나 절경이 펼쳐져 있다.
갈수록 대청봉은 멀어지고 울산바위가 가슴께로 파고든다.
다시 금강굴을 지나는 동안 위태한 돌무더기를 디디고 지난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틈틈이 숨고르기를 하고 잠시 통증이 풀리기를 기대하며 나무에 기대선다.
후....
내려가면 먹고 싶은 것들을 떠올린다.
얼음 알갱이가 촘촘하게 든 쥬쥬바.
얼음 둥둥 수박화채.
얼음 갈아만든 팥빙수.
살짝 언 표면으로 밥알 몇 개가 떠있는 동동주.
그리고 마개를 열면 '툭'소리가 거품과 함께 터져 나오는 무시무시하게 시원한 캔맥주.
제일 먼저 가계가 보이면 쥬쥬바를 먹고 그걸 다 먹으면 주점에 가서 캔맥주를 쫘악~ 마시
고 다음에 동동주를 마셔야지..~~그리고 도시에 가서 팥빙수를 먹고 집에 가는 길에 수박을
사다가 스푼으로 툭툭 떠 넣고 노란 설탕이랑 얼음 듬뿍 넣고 진짜 맛있고 시원 끝내주는
화채를 만들어 먹어야지이.!!!
금강굴을 가기 위해 올라오는 사람들의 차림새를 보자 공연히 걱정이 앞선다.
샌들 신은 여자, 어린아이, 막걸리냄새를 풀풀 거리는 노인까지..
얼마를 가자 드리어 폭포소리가 들린다.
비선대.
널따란 바위에 발을 담그고 바위에 누웠다.
다시 자고 싶다.
물은 차거우나 햇살에 데워진 바위표면이 미지근 따뜻하다.
태양이 가려진 나무그늘아래 안방같이 널따란 바위에 다리 쭉 뻗고 누웠으니...
이대로 자고 싶다.
예전과 똑같이 다리양옆으로 식당과 매점이 즐비하다.
쥬쥬바를 사서 팔에다 대고 얼굴에다 댔다가 입으로 가져갔다.
그걸 다 먹고 나자 주점이 보인다.
참기름냄새가 솔솔 향기로운 도토리묵과 얼음이 사각거리는 동동주 두 사발.
우~~ 넘 좋타!!
죽어도 좋아!! - 영화제목이지? - 오버하지 말자.^^
'*............떠나기 > 산으로**가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락산 040920 (0) | 2005.06.17 |
---|---|
북한산에서 길잃기 (0) | 2005.06.17 |
황악산 (0) | 2005.06.17 |
태백산 031229 (0) | 2005.06.17 |
내변산 (0) | 2005.06.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