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0706
강원도 땅. 화진포바닷가에 세워진 이 차와 솔트렉이라고 쓰여진 글귀를 보자 다른 날 같지않게 기분이 이상했다. 마치 곁에 있서 자주 보던 사람이 멀리 떠나있다 다시 돌아온 것 같은 그런 반가우나 낮선 느낌. 그런가 하면 지원군이 온 것같은 든든함.
부지런한 형록씨. 아침을 준비하고 있다. 국과 밥과 오징어볶음을 하느라 바쁘다.
모래바람이 거세어져 밥조차 제대로 먹을 수가 없어 대형텐트안에서 식사를 하기로 하고 들어갔더니 웬걸. 이제는 너무 더워서 먹을 수가 없었다. 들어온 사람들은 하나둘 시에라컵에 밥과 국을 담아 밖으로 나간다.
8시05분.
전날의 종착지 거진읍에 도착. 단체사진을 찍느라 분주했다. 이제 다시는 할 수없는 출발지 기념사진행사였다. 어젯밤 참석하신 09님이 버스터미널로 가시고 우리는 다시 통일전망대를 향한 걸음을 옮긴다.
어제에 이어 다시 한번 국순화이팅을 외치며 걸어간다.
어째서 사람들이 아래로 내려가나 했더니 도로 밑 바위틈에서 샘이 나고 있었다. 내려다보고 있는 사람들의 물통에 죄 물을 담아주느라 보보스와 형록씨가 수고를 하고 있다.
길가 원두막에서 둔장님이 사 주신 참외를 하나씩 집어먹고 한바탕 농담을 주고받다가 다시 화진포를 향해서 걸어간다.
진분홍 해당화와 철조망 안쪽에 갇힌 나리꽃이 더위에도 아랑곳없이 생생하게 빛을 발하고 있다. 지난 16차에서는 바닷가에 지천으로 피어있는 해당화가 이제는 사그라 들고 꽃 진 자리에 열매가 맺혀있다.
화진포바다에 들어서기 전. 일명 김일성별장이라는 곳과 이기붕별장관람을 하기위해 매표소를 향해갔다. 썬이 인원을 점검하고 돈을 지불하기 위해 서있는데 계산이 끝나자 탁하고 문 닫히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후에 듣자니 퉁명스러운 말투에 상당히 불친절했다고 한다. 더운 날 일행이 띄엄띄엄 오느라 매표구 문을 좀 오래 열어놨다고 그런 걸까? 얼마전 17차 준비를 위해 고성군청에 야영지를 알아보느라 전화를 했다. 세세한 사항을 묻느라 시간이 길어졌다. 통화가 끝나고 "답변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하는 도중 전화기를 어찌나 거세게 내려놓는지 고맙던 마음이 일시에 사르라 들었다.
김일성별장이라는 곳이 원래 그 일가의 별장용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독일인이 만든 예배당 이였다고 한다. 성처럼 지어졌다해서 ‘화진포의 성‘이라고 불리었는데 김일성일가가 머문 적이 있다고 해서 김일성별장으로 더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예전에 들어가 본 바로는 예상보다 규모가 작은 것에 실망스러웠는데 경관은 참 좋은 편이였다. 게다가 해풍이 넘나드는 테라스 또한 마음에 들었었다.
이기붕별장 역시 달랑 작은 방 3칸이 전부였다. 침대도 두 사람이 눕기에는 몹시 좁아보였다. 가재도구도 빈약해 원래 검소한 분이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다만 곁에서 보기에는 담쟁이로 칭칭 감겨진 벽면과 작은 잔디밭과 솔숲이 운치가 있다.
바닷가 콘도를 지나 계속 진행을 하자 모래사장을 가로질러 난 철조망이 있고 그 너머가 뜻밖에도 우리가 어젯밤 보내던 그 장소였다.
화진포호수를 끼고 걸어가자 박물관이 보인다. 입장료 5000원이 비싸다는 말을 한마디씩 하며 지나친다. “저 안에 뭐가 있을까?“ 누군가 묻자 누군가 답하길 물고기가 있다고 하네.
강가에는 갈대가 무성하다. 바람에 몸을 들썩이며 쏴아ㅡㅡ 파도 소리를 낸다.
바람불어 좋은 날이다. 어젯밤 잠을 설치게 했던 그 바람이 걸어가는 내내 고마운 존재가 되었다.
대진고등학교 정문 위의 현수막에는 ‘학교폭력 신고‘라는 글귀가 펄럭이고 있다. 방송에서 자주 거론되는 문제들이 이곳 해안가 마을의 학교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는 걸까?
나는 가끔 아이들이 무섭게 느껴진다. 늦은 밤. 골목의 으슥한 곳에 삼삼오오 모여 앉거나 서서 담배를 문 얼굴에 인상을 구기고는 홀깃 쳐다본다. 눈이라도 마추질까 얼른 고개를 돌려야 한다. 그리고 웬 침은 그렇게 자주 뱉어내는지. 소리또한 강하고 날카롭고 크다. 지나는 동안 내 옷에 묻기라도 한 것처럼 섬뜩하다.
그래도 아직은 착하고 어질고 맑은 심성을 가진 아이들이 많은 것에 위안을 삼아야 겠다.
해수욕장 모퉁이를 돌자 노란 물탱크를 머리에 인 샤워장과 화장실이 보인다. 나란히 여,남샤워장 여, 남화장실이라고 쓰인 문짝을 달고 잡초에 감겨있다. 아마 더는 사용하고 있지는 않는 것 같다.
대진항 한쪽 구석에서 모여 있는 일행들을 본다. 둔장님이 이번에는 멍게를 사셨다. 자연산이라 맛이 각별하다해서 한 점 입에 넣었는데 단박에 특유의 향과 짭조름한 맛이 입 안 가득 넘쳐났다. 남정네들은 바빴다. 한손에는 소주를 한손에는 멍게한쪽씩을 들었다.
‘둔장님표 머핀’이 나왔다. 빵을 별로 탐탁치 않게 생각하던 사람들도 한입 베어 물자 표정이 달라졌다.
오늘아침 일찍 온다던 종균씨. 이제 나타났다. 여전히 검게 그을린 얼굴이다.
빈집을 보면 버림받았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 만들어졌을때의 당당함은 간데없고 낡고 초라한 몰골, 비어있는 공간에 깃드는 음습한 기운과 매일 조금씩 삭아져 내리는 문짝과 벽이 그래서 가여워진다.
‘마차진 해수욕장’이라는 간판을 본다. 아마도 남측 최북단에 있는 해수욕장이 아닐까 싶다.
‘통일전망대신고소’ 까지는 이제 700m. 약 20분이면 이 걸음도 끝이다.
11시40분.
안보공원에 도착. 도보길은 여기가 끝이다. 이제는 차로 이동을 해서 목적지까지 가야한다.
좀 전부터 맹렬하게 내리쬐던 더위는 이곳에 와서도 여전하다. 생각해 보니 오늘 오전동안에도 평소에 마시던 물의 열배쯤은 마시지 않았을까 싶다.
신고서에 각자 이름과 나이를 적고 기다렸다가 영화상영관으로 들어갔다. 교육장이라고 해야하나? 어찌나 시원한지 비로소 살아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영화상영을 시작하는데 보는둥 마는 둥, 말또한 제대로 듣는둥 마는둥 하던 사람들이 통일전망대까지의 계단이 120여개가 넘는다는 설명을 듣자 저마다 신음소리를 낸다. 더군다나 이런 살인더위에 말이다.
12시35분
드디어 통일전망대 도착.
꼭대기 층에 올라가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제 나아갈 길은 있으나 더 이상 갈 수는 없다.
2007년 2월에 시작한 국토종단길이 여기서 끝맺음을 하게 된다. 축하한다는 말을 듣기는 했으나 기뻐할 여력이 없는 것은 어째서 일까? 몇 달 전 5km를 빠진 때문일까? 아니면 부산과 임진각, 그리고 국토횡단을 다시 해야 한다고 머릿속에 각인한 때문일까? 그래서 아직은 축하를 받기는 이르다는 겸손때문일까? 1년 4개월 동안의 시간을 지나고 나서야 이 곳에 올수 있었다는 사실또한 좀체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래도 긴 여정동안 크고 작은 어려움을 넘어 온 스스로에게 대견하다는 생각을 가진다.
북녘 땅이 보이는 바다쪽 동산에는 부처상과 성모마리아상이 놓여있었다. 사연이 있는 이들의 많은 기도들이 넘쳐났을 저 곳.
주차장에서 보자니 곧이어 7번국도가 있었다. 깨어진 아스팔트의 틈을 메우고 있는 키 낮은 잡초들이 지나는 차가 없다는 흔적을 보여준다.
여기까지다. 7번국도 위를 달려 갈 수 없는 땅이 저만치에 있다. 이 길에 서서 바라보자니 가슴이 울렁거린다.
속초시 동명항으로 들어 와 생선찜으로 유명하다는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식사를 하기 전 솔트렉사에서 보내온 선물을 한아름씩 받는다. 실은 예상하지는 못했다. 얼마 전 전화로 플래카드와 도움이 될 만한 무언가를 물어봤을 때 작은 소품을 청했었다.
사장님과 본사직원들의 배려에 지면으로 감사를, 또한 챌린져팀의 팀장님이하 모든 팀원들의 그동안의 관심과 격려와 마지막을 함께 해준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생각해 보면 나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그래서 언제나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매순간 깨닫게 된다.
아름다운 이 세상. 두 다리로 여러 날을 걸어 이 곳까지 오게 되었음에 다시 한 번 감사를...
▶날 짜 : 2008년 7월 6일
▶간 곳 : 거진해수욕장~대진해수욕장~고성군 현내면~안보공원~통일전망대.
▶시 간 : 4시간 25분(휴식및 관람및 대기시간 3시간 포함)
▶거 리 : 10.3km
▶누계거리 : 807.5km
▶동 행 자 : 둔장, ⓢⓤⓝ, 감자, 강산에 ,보보스, 보라빛바다, 솔트렉 챌린져팀, 권용덕.
▶소요비용 : 63,100원 (이틀간)
▶코 스 :
ㆍ07시 50분 : 화진포해수욕장 차로 이동.
ㆍ08시 10분 : 거진항 출발
ㆍ09시 45분 : 화진포 해수욕장 김일성별장 관람
ㆍ10시 30분 : 화진포 박물관
ㆍ11시 02분 : 대진항 도착 (휴식)
ㆍ11시 30분 : 마차진 해수욕장
ㆍ11시 40분 : 안보공원도착 (교육후 차로 이동)
. 12시 35분 : 통일전망대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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