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307
새벽4시에 일어나 5시30분발 구포행기차를 타기위해 서울역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휑한 차도를 빠르게 달려와 도착한 시간이 4시30분. 헉 너무 일찍왔따.
역사 안에 들어서기도 전에 가장 많이 눈에 띄는 사람은 역시 노숙인 들이다. 먼데서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웅숭거린 어깨, 이불보따리를 껴안고 느리게 걸어가는 모습. 가까워질수록 후각을 자극하는 찌든 냄새와 칙칙한 낮빛.
나또한 이불보따리를 쑤셔 넣은 큼직막한 배낭을 옆에 끼고 주변의 의자에 앉아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그들과 다를 바 없는 듯싶다.
일행을 만나서 다시 한달만에 부산으로 출발.
한명은 광명역에서, 세명은 다시 대전에서 합류한다.
구포역 왼쪽 골목으로 들어가 예전에 온 적이 있었던 돼지고기국밥집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플랭카드를 앞에 두르고 사진을 찍었다. 언제나 처럼 오늘은 어떤 풍경속을 걸어가게 될까 기대가 앞선다.
오늘은 출발부터 긴 다리를 건넌다. 이제는 부산시로 편입이 된 옛 김해로 넘어가는 다리.
철교를 지나는 전철을 보니 겨우 4칸이다. 서울에 비하자면 미니전철이라고 할 수 있겠다.
따사로운 햇살. 그러나 바람은 제법 차다. 그럼에도 낙동강바람에 얼굴을 간질이는 머리카락의 감촉이 좋다.
20여 년 전의 기억을 머리속에 담고있는 나는 이 다리를 건너면 예전처럼 짠하고 평야가 나타날 줄 알았다. 지평선너머의 어디까지 넓디넓게 펼쳐진 우리가 알고 있는 김해평야 말이다. 그런데 너른 들의 차도 쪽부터 해서 어김없이 시멘트건물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가도 가도 이어진 무슨 공업소와 식품가계와 정비소, 약방과 여러 가계들이 빼곡했다. 초록에서 금빛으로 넘실거리는 예전의 그 들판은 어디로 숨었을까?
어느 해 여름. 한 달간의 은둔생활을 했던 ‘대저면’이라는 지명을 가졌던 작은 마을을 지나고 다시 개천을 지나 계속 직진을 한다.
앞서간 일행이 파출소옆의 공터에서 자리를 잡고 간식을 꺼내놓았다.
오늘은 배낭이 무겁다. 좀전부터 어깨가 뻐근해 왔었다. 해서 제일 먼저 꺼낸 것이 무게가 나감직한 두툼한 떡 한팩.
어디서부터였는지? 아마 구포에서 다리를 넘어서자마자 였을 것이다. 공사 중인 고가도로가 지루하게 따라붙었다. 하늘을 세로로 조각내고 바닥에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운 흉물스러운 시멘트구조물. 움직이는 사람과 물자가 많아지자 차가 많아지고 길이 자꾸만 넓어지고 늘어났다. 그리고 지상에 있는 것으로 모자라 땅속으로 공중으로 생겨나기도 한다. 빨리 가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를 채우느라 비행수단 또한 늘어나서 점차 이 작은 나라의 하늘도 소란스러워지지 않을까?
김해군 진영읍으로 들어서자 ‘가야의 거리’라는 곳이 나타났다. 예전 부산의 학교에서 소풍을 온 곳이 ‘김해왕릉’이였는데 지금 보니 어디가 어딘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편지를 주고받느라 주소를 기억하고 있는 y가 살았던 김해읍부원면은 또 어디쯤 이였는지도 알 수가 없다.
가야 유적지를 지나고 잘 지어진 가야박물관을 지나고 길가에서 라면을 먹기로 했었던 곳을 지나 짜장면집으로 들어갔다.
점심을 먹고나서는 다시 출발. 개천으로 난 산책로를 따라 계속 진행한다.
역시 남녁땅이라 매화며 산수유가 만개했다. 그 곁의 작은 정자에서 앉아 잠시 쉬었다 일어섰다.
아직도 갈 길은 멀다.
김해를 걷기사작한지 대여섯시간이 되어서야 비로소 시골의 정경이 보인다. 낮은 지붕, 초록싹이 움트고 있는 들판, 집집의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도심의 일상에서 생채기가 난 마음을 가라앉혀줄 만큼 평화롭다. 이 고요하고 맑은 정겨운 풍경.
불현듯 이정표를 보니 김해군 봉하마을을 알리고 있다. 미디어매체에서 자주 보고 들어 익숙해진 지명이라 반가운 마음이 든다. 이 곳까지 오기도 힘든데 들려봐야 하지않을까라는 생각을 잠깐하고는 곧 지워버렸다. 어림도 없지. 좀 전부터 배낭의 무게가 버겨워 어깨와 맞닿은 부분에 손가락을 집어넣고 걷고 있는 중이였다.
어깨가 아파옴에 따라 점차 길고 지루해지는 길. 적당한 높낮이가 있는 고개를 두어개 넘자 '생림중학교'가 멀리서 보인다.
좀체 보기 힘든 시골외양간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카메라를 들이댔다. 송아지가 서너마리 모여있다가 나와 시선을 맞추고는 다가온다. 오지마오지마~ 사람으로 치자면 아기에 불과한데도 나는 공연히 겁을 먹고 뒷걸음질을 쳤다. 아기치고는 너무 크긴하지. 순박하고 호기심많은 눈망울을 굴리는 놈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강아지쯤으로 생각하고 이마라도 만져줄걸...
6,시20분
생림중학교.
오늘의 비박지에 도착했다.
학교곁의 작은 농가또한 시선을 잡아 끈다. 채색하지않은 수수함, 소박함이 보인다.
고르고 편편한 바닥과 바람을 피하는 장소중에 선택하기가 힘이 들이 우왕자왕하다 건물의 현관앞에 자리를 잡았다.
성큼 내려앉은 어둠속에서 식사와 곁들인 술자리의 남자들은 서서히 취기가 올라가고 이런저런 화제가 풍성해졌다.
민박을 할 일행이 자리를 뜨고서도 술자리가 이어지는 가운데 침낭속에 누운 우리들은 애써 잠을 청한다.
090808
아침이였다.
누구는 맞은편 절의 목탁소리를 들었다고 하는데 나는 새벽녘 잠시 한기를 느낀것 외에는 푹 잘 잔것 같다.
3월초라 그런지 아직은 침낭속에서 퍼득 나오기에는 기온이 차다.
기상시산이 원래 6시였다가 취중의 누군가는 5시반이라고 정정하더니만 결국은 식사후 출발시간이 10시가 다와갔다.
이런... 나또한 늦게 일어났으니...
대구-구포를 도보하시는 인도행회원 몇 분과 인사를 하고 출발전 사진을 찍었다. 동대구-구포 110km를 무박으로 진행하시는 분들이다. 나는 당분간 생각도 못할 거리다.
걸음이 빨라졌다. 어젯밤 민박으로 간 일행을 아침에 만나기로 했는데 우리가 많이 늦어진 탓에 민망스럽다.
이 곳 여기저기 담벼락등에는 유독 ‘인력구함’이라는 글씨가 많다. 저런곳에 가버리면 농사는 누가 짓는거지? 그나마 남아있는 젊은 인력들을 건설현장등으로 불러들이는 건가? 아니면 농한기에 임시로 할수있는 일자리를 구하는 건지도 몰랐다.
‘삼랑진교‘라는 다리가 있다. 오랜세월 제 몫을 넉넉히 해 냈을 이 낡은 시멘트다리.
그 옆에는 새로 건설중인 큰 다리가 분홍색칠을 하고 거만하게 서있었다. 차량왕래가 얼마나 많아진다고 또 만들까 싶다. 바라보자니 늙고 주름투성이의 키가 오그라진 부모세대가 떠올라 마음이 착잡하다.
다리를 건너자 마자 나타난 구멍가계.
시골로 깊이 들어올 수록 이런 가계조차 만나기가 힘들다. 좀 전 부터 부쩍 높아온 기온탓에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었는데 소원풀었다.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입에 물고 다시 출발.
아직 만나지 못한 앞선 일행을 따라잡을려니 마음이 바쁘다.
밀양강가는 완연한 봄이다. 가지 끝에 새순이 나고 작은 보트에 서서 낚시대를 드리운 남자의 모습에서도 따스함이 묻어있다. 그리고 그 고운 물빛이라니...
서울에서는 아직도 시린 칼바람이 골목을 휘감아 도는데 이곳에는 훈풍이 대지를 깨어놓았다. 언땅을 헤집어 지기을 뽑아올리는 나무의 심장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얼음에 발목이 묶여있던 배들도 기지개를 켜고 있다.
둑방길로 접어들었는데 앞선지 얼마되지않았다는 일행은 걸음을 빨리해 걸었는데도 좀체 만나기가 힘이 든다.
드디어 조우하게 된 일행들은 한껏 여유로운 모습이다. 모노포트와 나무지방이를 높이 쳐들어 개선문을 만들어 환영을 한다. 입에는 풀피리를 하나씩 물었다.
12시30분
이곳에서는 점심을 사서 먹을 식당이 없다.
미쳐 라면을 사오지 못해 남은 음식을 꺼내 모조리 나뉘 먹기로 했다.
오뎅과 햄과 컵라면 등등을 풀어놓고 다리밑 공터에서 즐거운 오찬이 시작되었다.
먹고난 뒷처리를 하느라 쓰레기를 불붙혀 태우는 두 사람. 미처 몰랐는데 몇 걸음 걸어오다 보니 경고문이 있었네. 불법소각시 벌금 200만원이하. 헉!!!
강변길을 따라가다보니 길이 없어져버렸다. 위 뚝방쪽으로 올라가다 딸기를 심은 비닐하우스를 지나게 되었다. 들어가서 물어봤더니 딸기 한대야에 고작 4000원. 감자가 산다고 나섰는데 돈은 회비로 지출되었지만 감자의 마음이 고맙따~~
도로공사장 설치물에 올라앉아 모두 분주하게 손을 움직여 집어 열심히 입으로 넣었다
3시40분
가계가 다시 보였다. 더운날이라 빙과류가 입에 당긴다.
아마 3-40분이면 밀양역에 도착할것 같은데 저마다 지쳐있는 모습이다.
이곳도 서울외곽지처럼 밀양시에 들어서기전 변두리에는 비닐하우스가 줄지어 있다.
그리고 동네의 사랑방노릇의 했을 한가한 이용원. 우리들의 아버지와 할아버지, 삼촌과 이웃어른들이 드나들고 모여 이런저런 담소를 나눴을 친숙하고 정겹던 장소.
밀양대교다.
예전에 일주일정도를 보냈던 강변은 어디쯤인지 역시나 감을 잡기가 힘들다.
철교밑에서도 이틀정도를 보냈는데 철교가 위치를 바꾸지않았다면 그대로 있을 그 장소를 애써 눈으로 더듬거렸다. 아련히 떠오르는 추억이라는 것은 달콤하지만 때로는 가슴이 아린다. 마치 나는 추억여행을 하고있는 것 같다. 다음차에 이어지는 대구또한 사춘기의 내가 여러군데 자취를 남기며 다녔던 곳이였다.
여인숙여인숙 저 옛스럽고 소박한 단어. 이제는 여행객조차 좀체 드나들지않을 숙박지.
어려서 아마.. 그렇지. 초등학교때였다. 학교에서 집으로 가자면 문방구 맞은편으로 저 글짜가 담벼락에 크게 써 있었다. 여.인.숙. 도대체 여인숙이 뭐지? 뭐하는 곳인지 짐작을 할 수가 없었다. 작은 창이 여러개 줄지어 나 있던 그 집의 정체가 날로 궁금했는데 어른들 누구하나 제대로 가르쳐 주질 않았다.
후에 한자를 알게 되면서 비로소 그 의미를 알게 되었다. 나그네가 묵는 곳이라니.. 따뜻하고 편안한 이미지. 그리고 꽤나 낭만적으로 비춰졌다.
주차를 하면 차량을 파손시킬수도 있다는 무지막지한 협박문.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일찍 도착해서 뒷풀이를 할 생각이였는데 간단히 음료수로 대신하기로 했다.
밀양역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부산팀과 서울팀이 각자 나뉘어 졌다. 고단한 걸음으로 예약석으로 가 앉았다.
▶날 짜 : 2009년 3월 7~8일(토~일요일)
▶간 곳 :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역~경남 밀양시 밀양역
▶코 스 : 구포역~구포대교~~강서구청~불암치안센타~동김해IC~김해시청~전하교교차로 (우회전)~봉황동 유적~대성동 고분군~삼계중~대우푸르지오아파트~나발고개~사촌리~생림면소재지~생림중(1박)~삼랑진 인도교~마사리 3거리~밀양강 잠수교~밀양강 제방길~국립종자관리소~남밀양IC밑~예림교~밀양역
▶소요시간 : 15시간 35분 (첫날 9 : 03분, 둘째날 6 : 32분/휴식 및 식사 : 3시간 05분 포함)
▶거 리 : 47.9km(첫날 29.9km, 둘째날 18.0km)
▶동 행 자 : 산그리고, ⓢⓤⓝ, 감자, 보보스, 여포짱, 나노, 트레킹, 송동식, 그랑불루, 강산에,현숙, 북극곰 (첫날) 총 (12명)
'*..........국토순례 > 국토종단[부산-파주]'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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