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1203
친구가 전화를 해왔다. 바람쐬러 가자~~ 양수리에 있는 수종사라고 있어.
이제 겨우 5시를 넘기는 가 싶었는데 벌써 해가 지고 있었다. 몹시 가파른 길을 트럭을 운전하고 가는 친구는 심란한 표정이다. 예전에 한번 이곳에 차를 끌고 왔었는데 몹시 애를 먹었다 해서 두 번 다시는 차를 끌고 이 오르막을 가지 않을 거라고 맘먹었다는데 금새 어둑해질 것 같아 시간을 아끼고 싶어 부득이 힘겹게 가고 있다. 몹시 덜컹거려 옆자리에 앉아있는 것도 고역이었다. 포장을 했다고는 하나 고르지 못한 시멘트길. 군데군데 패인 곳이 대부분이라 기우뚱 차체는 흔들리고 엔진은 악쓰는 소리를 내고 있다. 다행이 맞은편에서 오는 차가 없어 그럭저럭 올라 절 못미처 한 곁에 세워둘 수가 있었다.
어둑한 산길, 잎사귀를 거의 떨군 어수선하고 황량한 나무들, 적당히 습기를 머금은 청량한 공기. 조금을 더 올라가자 넓다란 공터가 나오고 몹시 큰 불상아래 촛불이 팔랑거리고 있다. 바라보자니 위태로운 촛불...혹 심한 바람에 불씨가 날리지는 않을까 싶은 공연한 걱정을 한다
좁다한 돌게단을 오르다보니 몇 채의 절간. 이 절은 1459년 세조가 창건했다고 전해지기는 하나 1439년에 세워진 정의옹주의 부도가 있는 것으로 봐서 그 이전에 창건되었을 수도 있다고 한다. 이렇게 산을 다니다 보면 고대로부터 내려져 온 절들이 많기는 하나 일일이 알 수도 알려고도 하지는 않아 그저 오래된 것이거니 그러고 만다. 규모가 커 보이지는 않으나 전망은 참 감탄할 만 하다. 운길산 중턱에 앉아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지점 두물머리 주변의 아름답고 아련한 풍광들을 빠짐없이 찬찬히 보여주고 있었다. 바라보고 있자면 아래세상의 모습은 오래전의 그리움처럼 밀쳐두고 새로이 정갈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속계(俗界)를 떠나온 수도자처럼 욕심도 옅어지고 원망도 가라앉아 문득 너그럽고 담담해 지는 이 가벼움. 뒤돌아 서 몇걸음을 걷다 일순 정적을 깨트리는 큰 개들의 왕왕거리는 소리에 멈춰선다.
절 한곁에 있는 세조가 심었다는 600년 된 은행나무. 오랜 수령에 걸맞는 웅장하고 의엿한 풍채. 절정의 가을속에서 황금빛융단으로 깔려있었을 노란이파리들은 흔적이 미미하다. 어느 바람에 날려갔을까? 아니면 등산객들의 발자취에 묻어갔거나 스님의 싸리나무 빗질에 쓸려갔을지도 모른다. 찻집이 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아무런 안내문도 없었지만 웬지 모를 엄숙함이 느껴졌을까? 조심스러움으로 문을 열었다. 대여섯 개의 낮은 탁자가 양쪽에 나란히 있고 한면을 꽉 채운 통유리창으로 해의 잔영이 깊숙히 깔려있다. 작고 정갈한 방에는 먼저 온 여자분 들이 앉아계시다. 차 마시는 법도 모르고 머쓱해 졌는데 이곳에 들른 적이 있는 친구가 익숙한 듯 그러나 차분하게 엄숙한 듯 차를 낸다. 찻잔을 오른손으로 잡고 왼손으로 찻잔의 밑 부분을 잡아 향을 맡고 조금씩 입속으로 흘려 넣었다. 시늉을 내느라 고는 했지만 왠지 어색함. 그냥 평소 하던 대로 하자 싶어 홀짝홀짝 넘겼다. 이 나이에 아직도 펄펄 멋대로인 내 성향이 고상하게 폼 잡는 걸 참아내지 못하는 게다. 차 맛이 어떠한지는 제대로 알지 못한다.
친구가 물었다. "지금 창가에 있는 나무가 산수유가 맞지?" "꽃이 필 적에는 산수유인지 생강나무인지 구분이 안가." 그래. 산수유. 산수유 꽃을 본 것은 올 봄 사진을 찍는 모임에서 지리산자락의 산수유마을을 가서 본 게 처음이자 마지막 이였다. 서울에서 상당한 기대를 안고 내려가면서 근사한 산수유마을 사진을 머릿속에 그리며 하룻밤을 보내고 새벽에 카메라를 부여잡고 나섰지만 이상저온으로 미처 피지도 못한 꽃망울을 원망스레 바라보고 뒤돌아 온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열매가 작고 빨간 빛을 띠고 있다는 걸 안 건 설악산을 가서 인것 같다. 그 붉은 열매로 차를 내고 술을 빚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산수유 열매사이로 멀리 보이는 강물, 사람이 낸 몇 개의 다리들. 전망을 비켜선 겨울나무들 황혼의 잔재로 물든 저녁하늘. 얼마쯤 시간이 지나면 아니 어쩌면 지금이라도 나는 이곳에서 그윽한 풍광들을 바라보고 산다면 살 수 있다면 어떠할까? 실은 몹시 그러고 싶은 마음이 불현듯 일었다.
운길산 자락을 붉게 물들이며 사그라져가던 노을은 아주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긴 강물도 어둠 속에서 어름풋한 실루엣을 만들어 누워있고 강 건너편에 듬성듬성 불빛이 피어나고 있었다. 조심조심 차를 몰고 내려가 서울로 돌아오는 길위를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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