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변산
이른 새벽 일어나 앉아 티브를 켜고 멍하니 화면을 바라본다.
아침잠이 많아서 곤욕스럽다는 건 이제 이유가 아니다.
언제나 처럼 산행전날 잠을 설치는 징크스가 어김없이 나타났다.
두세 시간이라도 제대로 자봤음 좋겠다는 생각.
새벽길에 분주한 사람들.
낙엽 뿌려진 골목을 쓰는 청소부.
작업장비를 들고 성큼성큼 걸어가는 남자와 추위로부터 몸을 단단히 감싸고 종종걸음을 옮
기는 어느 아주머니.
각자의 몫을 하느라 새벽잠을 밀어내고 나선 사람들.
이르지도 않은 아침 언제나 이불 속에서 몇십 분을 꼼지락거리다 마지못해 일어나는 내가
부끄러운 마음이 드는 순간이다.
버티고개역
내가 다가서자 비로소'윙'쇳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하는 에스컬레이터에 발을 디딘다.
유난히 이 역은 사람이 드물다.
전철의자에 앉아 맞은편을 바라보자 띄염띄염 앉아서 조는 사람들의 머리 뒤로 터널 안 주
황의 불빛이 번갈아 비켜가고 있다.
한강대교를 지나자 비로소 세상은 깨어난 듯 보인다.
자동차 전조등의 행렬이 길게 늘어서 있다.
이 시간에..
모두들 바쁘구나.
저렇게들 저마다의 목적을 가지고 어둠 속을 분주히 가는 차 속의 사람들...
어? 버스색깔이 바뀌었네?
그럼 운전자도 다른 사람이려나?
버스 옆에 낯선 남자가 뚝뚝하고 단단한 모습으로 서있다.
누구지?-새로운 기사.
산에 함 가보자고 몇 달 전부터 벼르던 아는 언니 한 분이 동참하기로 했는데 ...
풀죽은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
"어떡하지? 나 늦을 것 같은데...."
그래도 오시기나 하시지요...^^
이번처럼 수월한 산행도 별로 없을 것 이였다.
얼마쯤의 오르막을 지나자 적당한 능선을 타고 간간이 시야가 트인 곳에서 감탄사를 내어놓
을 근사한 풍광을 볼 수 있었다.
지리산에서 볼 수 없어 아쉬웠던 단풍이 그리고 진 주황의 감이 하늘 어디쯤 매달려 있었
다.
가끔씩 곁을 스치는 바람소리, 발 밑의 낙엽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그리고 간간이 사람들의
수선거림이 어우러지는 이곳에서 우리는 비로소 자연스러운 사람이 되는 게 아닐까...
직소폭포에서 쏟아져 내리던 물줄기가 어느 산자락 밑에서 못을 만들었다.
계곡을 휘감아 도는 바람에 물결이 전율을 하며 바르르 떠는 수면 위 나무 한 그루를 품은
바위가 섬처럼 떠 있다.
아직은 뾰족한 각을 세운 저 바위도 얼만큼의 시간이 지나면 뒤척이는 물살에 표면이 뭉퉁
거려지고 바람에 실려와 쌓이게 되는 흙먼지에 이끼와 잡초를 키울 것이다.
섬처럼...
어느 모퉁이를 돌아서면 따뜻한 햇살이, 그러다 돌연 차고 매서운 바람이 몸을 훑고 지난
다.
간혹 바다가 보이고 염전과 갯벌이 그리고 원색의 지붕을 인 집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내가 사는 세상에서는 곁에 둘 수 없는 여유로움, 아름다움, 그리고 이 따뜻한 충만감이라
니...
채석강
아마 오년 전 쯤이였을까?
사내산악회에서 이곳을 온 적이 있었다.
회원들 엄살에 내변산은 아니 가고 내소사뒷산을 다녀왔던 적이 있었다.
산보담 바다에서 보트 타고 회 먹고 사진 찍기에 바빴던 그날이 생각나 가슴이 뭉클하면서
동행했던 그녀들 생각이 났다.
티끌처럼 가볍고 달콤한 그날의 웃음소리가 그립다.
이제는 더러 결혼도 했으리라.
근무했던 회사에는 몇이나 남아있을까?
보고싶다.
바다에서 지는 해를 언제 봤을까?
나는 여직 그런 바다색을 본적이 없다.
진청색의 바다가 불끈불끈 솟구치며 몰려오고 있었다.
우루루 다가와 바위의 표면을 때리는 모습과 굉음앞에는 나는 점점 왜소해져 간다.
03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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