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혼자끄적이기

올드보이

미라공간 2005. 6. 17. 00:31

031202
[모래알이든 바위덩어리이건 물에 가라앉기는 마찬가지다.]

'올드보이'라는 영화를  봤다.

오늘은 꼭 그 일들을 치러야 한다고 결심했었다.
어제 그저께 내내..
더 이상 머뭇거리지 말자.
근데 나는 이것도 저것도 끝내 하지 못하고 어스름 저녁을 맞았다.
영화?
영화나 볼까?
뭐든 코믹영화를 보고 싶었다.
기분전환을 해야 해.
극장앞에 서자 원하던 것은 없었다.
'황산벌' 언제 개봉관에서 밀려났을까?
낭만자객?
어디선가든 평을 들은 적이 없어.
보고나서 후회해서 기분이 더 나빠지면 어떡하지. 시간낭비 돈낭비 했다고 말야.
올드보이?
직장동료가 썩 괜찮다고 했지...
최민식이 '올드보이'이면 난 '올드걸'인가?
노련한 척하는 실은 턱없이 미숙한 올드걸..

파출소 안
술이 몹시 취한 남자가 횡설수설한다.
그리고 딸에게 줄 선물인 날개옷을 입고 파닥거리다 난동을 부리고, 발로 구타당하고, 그리고 공중전화 앞에서 친구가 이름을 부르며 찾는 목소리가 빗소리에 흩어지고, 거리에 우산들이 바쁘게 지나는 장면이 끝났다.
문짝아래 달린 배식구에 얼굴을 디밀고 소리치다 절규하다 황당해 하는 남자의 얼굴이 글로즈업 됐다.
그리고 남자는 그 공간에 갇히게 된다.
오픈 되어 있는 화장실에 작은 타일들이 빼곡이 붙혀져 있고 흰색변기가 달려있고 침대가 있으며 TV가 있다.
그리고 필기도구가 있다.
이곳은 교도소도 아니며, 기도원도 아니며, 외계도 아니다.
누가 나를 가둔 것일까?
남자는 소소한 그간의 일들을 더듬어 간다.
누가 왜?
하나하나 사람들의 이름을 세밀히 적어 나가지만 답은 알 수가 없다.
남자의 독백 중에는 티브에 관한 얘기가 나온다.
TV는 시계이며, 달력이며, 학교이며, 애인이며, 친구다.
그 TV속에서는 영국 황태자 다이애나가 죽고, 성대한 영결식이 이어지고, 김대중씨가 대통령취임을 하고, 월드컵이 열리고. 000가 반지에 키스를 하고 경기장안을 뛰어간다.  
TV 안에서 세월이 흐른다.
세상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접속점이다.

어떤 때 나는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좋아하는 책을 실컨 읽고 싶었다.
교도소 같은 데라면 가능할 것 같았다.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

내가 가진 이런저런 문제들이나, 보다 무겁고 중대한 사안을 결정할 고심을 가진 사람이나, 어린아이가 엄마 몰래 저지른 사소한 일들에서 두려움을 갖는 것들이 경중을 떠나 각자에게는 비슷한 부피의 힘겨움 일진데...
어느 누구든 신체부위를 잘린다면 아픔을 느끼기는 매 한가지 인 것처럼...
모래알이든 바위덩어리건 물에 가라앉기는 마찬가지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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