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0328
보보스에게 사정이 생겨 둔장님과 나만 내려가기로 한다.
바빠진 보보스. 하는 일이 잘 진행이 되어 전처럼 여유롭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늦게 출발한 탓에 그만치 늦어 민박집을 찾느라 둔장님이 수고를 하시게 된다. 더욱이 비수기인터라 민박집들은 불을 끄고 있어 무작정 문을 두드리기가 부담스럽다. 두리번거리다 어느 집의 약한 불빛을 보고 간판에 있는 전화번호로 전화를 하자 어르신이 민박을 할 수 있다고 말을 하신다. 잘 됐다 싶었는데 곁으로 보기에 너무 허름해 망설이다가 다른 장소로 가봤지만 마땅치가 않아 다시 되돌아 왔다. 하루를 유할 그 민박집으로 들어서자 연로하신 어른신이 나오신다. 쾌쾌묵은 냄새와 함께 이 집안의 형편 또한 암울하다. 중풍이 든 40대의 큰아들, 그리고 교통사고로 졸지에 병원에 입원한 할머니, 엄마가 집을 나가 합류하게 된 큰아들의 손자손녀, 그리고 딸과 함께 꾸려나가는 집안이다. 우울한 사정으로 해서 침체된 분위기. 살다보면 이런 불행이 덮치기도 하지만 좋은 일도 반드시 있을 것이라 믿어 잘 견뎌내시기를 염원하는 마음이다.
작은 방의 바닥이 따뜻하지는 않은데 그나마 외풍은 없어 잠자기에는 괜찮지 싶었다.
080329
일찍 도착한 대전팀과 함께 김치콩나물죽을 만들어 먹고 배낭을 꾸리고 밖으로 나선다.
눈이 온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그렇게 눈이 쌓여있을 줄은 몰랐었다. 내일모레면 4월인데 눈이라니.. 3월에 간혹 내리는 눈을 본 적이 있기는 하지만 수복하게 야산전체를, 그리고 앞집의 지붕과 옆집의 마당까지 온통 백색의 눈으로 덮은 이 겨울풍경이라니 ....
차를 타고 지난달의 종착지를 향해 가는 동안 차창 밖의 풍경을 보고 연신 감탄을 한다. 그리고 우리가 오늘 걸어가는 내내 쌓인 눈이 그대로 있어주기를 바라고 바라면서...
‘반점재’에 도착해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언덕배기 한그루 소나무아래 서서 배시시 웃고 있는 필례의 표정은 어린소년의 맑은 미소를 닮았다. 그러고 보니 사람은 성인이 되기 전의 소년과 소녀일 때 까지가 얼마나 고운지.,.세상을 미쳐 격기 직전의 미숙한 그들의 수줍은 표정과 여린 몸짓으로 보이는 소박한 해맑음. 나는 문득 물끄러미 그들을 보노라면 어느 순간 감탄해 마지않는다. 그러다 점차 성인이 되어가면서 잃어가는 그 투명함과 순수함.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어 모자를 쓰고 방수자켓을 입고 배낭커버를 씌우고 걸어가기 시작한다.
커피가 마시고 싶은데 어디쯤에서 마셔야할지 알 수가 없다. 주유소나 가계라도 있지 않을까 목을 빼고 쳐다보면서 걸어간다.
고도가 낮아져서 인지 눈은 점차 비와 섞여 내리기 시작한다. 먼데 산을 점령한 안개는 아마도 옅은 기세로 내발치께에서도 감돌고 있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눈과 비와 안개. 그러고 보니 나는 습기를 좋아하고 있었네.
일렬로 서서 비를 뒤집어쓰고 있는 가로등 사이사이에는 심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여린 가로수들이 환절기의 몸살을 치르느라 떨고 있는 듯 보였다. 그리고 그 길을 걸어가고 있는 우리들. 그 묵묵함이 마치 물 흐르듯 본능을 다하는 것처럼 보인다. 지나는 집의 개가 낮선 이를 보고 짖어대는 것 또한 반사적으로 자기의 몫을 하기 위함인 것처럼 말이다.
한 시간을 훌쩍 넘긴지가 꽤 되었는데 앞서가는 둔장님은 쉬어가실 기미가 안 보인다. 모퉁이를 돌아서면 앉아계실까? 버스정류장에서 자리를 잡고 계시지 않을까 하고 기대를 하는데 번번이 그냥 가버리신다. 아마도 두 시간은 채워서 휴식을 하시려나 보다.
큰 트럭이 세워져 있는 곁에 ‘찐빵’이라는 간판이 있는 작은 원두막 같은 곳에 일행이 앉아있었다. 드디어 쉬는구나. 반가운 마음에 들어갔더니 장판지를 입힌 평상은 먼지가 수북하다. 한 곁에 배낭을 벗어두고 먹을거리를 손에 들었는데 금세 한기가 덮친다. 코펠에 물을 끓이는 중 한기를 달래야겠다는 생각에 홍어회를 곁들인 술을 한잔 마셨다. 주섬주섬 여러 가지를 먹기는 했는데 추위는 더해진다. 걸어서 체온을 덥히는 편이 나을 것 같아 오래 쉬지못하고 일어났다. 다시 부지런히 걸어가야 한다.
비가 그만 그쳐줬으면 좋겠다는 생각. 지금이 3월말인데 남녘에서는 초록풀이 나고 색색의 꽃이 피어있을텐데 이곳은 여전히 2월정도의 기온이다. 처마 끝에는 지붕에 쌓였던 눈이 흘려내려 긴 고드름이 맺혀있다.
빨강지붕위의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가라앉은 흰구름색과 대비해 파란색으로 피어 올라오는 것이 신기해 카메라에 담았다.
오른쪽으로 흐르고 있는 개울이 ‘오대천’이다.
너른 폭의 바닥아래 자갈을 어르고 지나는 물줄기. 작년에 이곳에서 수해가 심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제방을 쌓고 있는 곳이 걸어가는 내내 이어지고 있었다. 나무를 뽑고 흙더미를 다져두고 시멘트를 부어 인위적으로 만들어가는 구조물이 내게는 영 못마땅했다. 이제는 이 땅 곳곳 어디를 가나 차와 사람이 다니는 길은 자연스러움이 사라져 버리고 있다.
그래도 다행히 군데군데 강가에는 버들강아지가 피고 탱탱하고 물오른 벚나무 가지 끝에 새싹이 움트고 있다. 멀지않았다. 이 길에도 초록풀과 봄꽃들이 만개하겠다.
평창
이곳부터 평창군이 시작된다. 왼쪽으로는 이끼로 유명한 장전계곡으로 올라가는 길목이다.
언제쯤 다시 이곳을 와 볼 수 있을까...이끼사이를 흐르는 투명한 폭포를 찍게 될 날이 있을까? 달력속 7-8월의 풍경처럼 말이다.
점심을 먹어야 하는데 식당을 보기가 힘들다. 그나마 가끔 눈에 띄는 식당이라고 쓰인 간판을 보고 다가가 보면 휴업중이였다. 왜 이렇게 문을 닫아 건 식당이 많은지.. 앞서가던 필례와 둔장님이 번번이 다가갔다가 뒤돌아서 나오신다.
한시가 넘어 두시가 다 되어간다. 궁리 끝에 수해를 입어 폐허가 된 포장주점으로 들어갔다. 흉물스럽게 변해버린 그 업소는 식기며 이런저런 가구며 기구를 방치해 둬서 쓰레기장처럼 변해버렸다. 비만 피하면 된다싶은 생각에 찢어진 비닐문사이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떡이며 고구마를 코펠에 얹어 구웠더니 방금 만든 것 같이 흡족한 맛이다.
이제 식당을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쭉 진행을 해서 숙박할 곳을 찾아야 한다.
군데군데 민박집이며 펜션이 있기는 한데 가서 물어보면 민박집은 방도 없는데다 펜션은 가격이 몹시 비쌌다. 여기저기 간판을 보고 전화를 해 봤더니 대부분이 방두칸짜리 복층이 20만원에서 25만원 정도다. 10만원 정도로 예상했던 금액에서 많이 빗나가고 있다. 그러다 협상가 둔장님이 좀전에 연락한 집으로 다시 통화를 해서 어찌어찌 13만원에 펜션을 정했다.
‘청심대’라는 곳에 도착했다. 강여울의 절벽에 있는 정자였다. 힘들다 하면서도 다 왔다는 안도감에 힘을 내어 그 곳으로 향하는 계단을 밟아올라갔다. 조망이 좋아 여름날 몇 시간을 앉아 있거나 이곳에서 비박을 하면서 밤을 보내도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참 그러고 보니 병이네.. 좋은 장소만 보면 잠자리 생각부터 하니 말이다. 어느 친구의 걱정처럼 이 눔의 역마살이라니...
어젯밤 묵었던 청송민박집앞에서 차에 타고 좀 전에 예약한 펜션으로 갔는데 도로에서 가까울 줄 알았더니 구불구불한 비포장도로를 길로 이어진 산등성이를 올라가야했다. 그곳에서 도착하자 낭패스런 일이 생겼다. 주인아주머니와 전화통화를 해서 가격절충이 잘 되었는데 난데없이 남자분이 나오셔서 곤란하다는 말씀을 하신다. 술을 하신건지 불과한 얼굴에 어투가 좋질 않다. 그리고 안내한 곳이 방하나 거실하나의 복층 이였다. 좀 전에 예약한 방두개짜리 객실은 안 된다고 딱 잘라 말을 하기에 모두들 짐을 들고 다시 차에 올랐다. 그리고 좀 전에 알아봐 둔 다른 곳으로 전화를 해서 다시 그곳으로 향했다.
수항리 복지회관(보건진료소)아랫쪽의 ‘하얀구름아래 펜션‘
다행이 이곳은 가격도 저렴한데다 개울가의 좋은 경치가 바라보이는 근사한 곳이었다. 주인분들의 마음씀씀이도 좋아 좋은 대접을 받을 수있었다.
오늘 또한 둔장님이 준비해 오신 부드러운 고기의 맛을 보게 된다. 게다가 필레의 아내가 준비해준 홍회찌개를 같이 끊여서 푸짐한 식단을 만들게 되었다.
먹으면서 즐겁고 감사한 마음이 새록새록 든다. 살아가는 동안 나는 이렇게 여러 고마움을 접하면서 제대로 표현도 하지 못하고 갚지도 못하면서 지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새삼 마음에 걸린다.
사정이 생겨 올 수 없다고 하던 감자와 강사마가 들이닥쳤다. 이런 장난을 할 것이라고는 아무도 짐작할 수 없었는데 말이다. 왁자한 인사가 건네지고 다시 술자리가 이어졌다. 강원도 평창. 오대천가에서의 하룻밤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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