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10 16
아마 삼년전쯤 여름이였다.
설악산에 들어서 5박6일을 보낼까 어쩔까 고민하다 갑자기 출발하기 전날 마음을 바꿔 국토횡단을 하기로 하고는 강원도로 넘어 갔었다.
낙산에서 출발. 양양의 냇가에서 하루를 자고, 차량이 통제된 한계령길을 걸어와 휴계소에서 별 헤는 밤을 보내고, 다시 인제로 넘어와 소양강변에서 세번째 밤을 보내고 신남리까지 왔다가 중단했었다.
그 동안 몇 번이나 다시 하기위해 지도를 들여다 보고 계획을 잤다가 밀어두기를 여러번.
이번에 다시 설악 공룡능선을 타기로 한 계획이 틀어진 덕분에 드디어 인제군 신남행 버스에 오를 수가 있었다.
삼년전 그 날보다는 훨씬 선선해 진 날씨. 걷기에 아주 좋은 날씨다.
아침에 늦장을 부린 탓에 12시가 넘어 출발한다.
도로가 넓은데다 단풍철이니 강원도쪽 산으로 가는 차량이 많다.
공룡능선이 오늘내일 단풍으로 얼마나 근사할까 싶다.
버스도 많은데다 바이크족들이 연속으로 지나가는 소음이 커서 주눅들게 만든다.
44번 국도를 따라가는 것이 서울쪽 최단거리이기는 하지만 마을길로 빠지는 곳이 나타나면 지도를 들여다 보고 그 쪽으로 틀었다.
시멘트로 메꾸어 놓았지만 인적이 없는 시골길이 역시 좋다.
벼가 익어가는 계절. 푸른 하늘, 흰구름 더할 수없이 좋은 가을날이다.
서울 속초를 알리는 저 작은 팻말은 얼마나 오래 서 있었을까. 아마 이 길이 도로확장을 하기 전의 구 도로가 아닐까 싶다.
가끔 어린 강아지가 엄마곁을 떠나 호기심이 가득한 눈망울을 하고 나를 따라온다. 뒷쪽에 묶여있는 어미개의 자지러지는 울음이 커져가는 데 말이다. 손을 들어 가라는 시늉을 한다. 뒤 따라 오다 혹 차에 칠까 걱정스럽다.
농촌인구가 줄어 가다 보니 빈집을 비롯해서 식당도 페업한 곳이 자주보인다.
들녁은 풍성한데 사람들은 점차 빠져나간 시골동네.
늦게 출발한 탓에 욕심을 부리느라 하룻밤 묵을 집은 알아보지도 않고 가다보니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강물에 드리워진 석양의 잔해도 서둘러 흘러가고 있다. 강아지풀이 우수수 바람따라 흐느적 거리는 저녁. 마음이 급해졌다.
낮선 시골동네. 어디쯤에서 민박집을 찾을수 있을까? 안되면 민가에 들어가 도움을 청해야 하거나 식당이라도 가서 사정해야 할 지도 모른다.
'내촌천'이라는 샛강이 있는 두촌면 '아호라지'라는 동네에 이르자 다행히 민박이 있었다. 길가 표지판에 이런저런 상호가 있어 어디를 를 갈까 고민하다 조금이라도 더 걸어가자 싶어 다리를 건넜는데 그 동네는 식당이 없다. 배낭에는 저녁요기를 할 만한 것도 없는데다 가계도 없지, 있다해도 버너코펠도 없지 고만치 걸어 간게 아깝지만 다시 돌아와 강가를 따라 한참을 걸었다.
표지판에 식당을 겸한다고 했는데 혹시나 민박을 하지않거나 식사도 되지않으면 어쩌나 고민하다 들어섰는데 막걸리만 없다하네.
막걸리 생각이 간절했는데...
방으로 들어가 맥주한병 마시고 있자니 힘겹게 문이 열리면서 갓난아기가 젓병을 입에 물고 문틈으로 빼꼼 쳐다본다.
이런... 초저녁에 들어간 민박집에서는 11시가 넘도록 잠을 이룰수가 없다. 아이들 뛰어다니는 소리, 거실에 앉은 어른들 말소리 웃음소리에 피곤이 극에 달했는데도 도대체 잠을 잘 수가 없다. 내일아침 얼릉 일어나 나가야겠다.
강을 따라 걸어가다 보니 달처럼 수줍게 해가 떠오르게 있다. 지나는 사람 하나 없는 야산을 넘자 삼거리가 나타났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데 길치인 나는 뭘 믿고 왼쪽 산길로 접어들었을까?
단풍이 들기시작하는 이른 아침 작은 개울을 따라 걸어가다 동네분을 만나서 물었더니 이런.. 오대산 가는 길이라고 한다.
큰일날뻔했네.
동네길이 끊어져서 다시 44번국도로 접어 들었다.
난감하다 . 지도도 없지. 다시 샛길로 빠지고 싶은데 길이 어디로 연결되는 알 수가 없어 섣불리 들어 설 수도 없다.
지도를 잘 못 가져온 것이다. 애초에 양구쪽으로 빠질 계획이여서 그 쪽 지도를 뜯어온 것이다.
혹시나 해서 휴계소에서 만난 버스기사에게 물었더니 네이게이션덕분에 지도는 가지도 다니지도 않는다네.
어제 먹다남긴 만두를 끄집어냈다. 어떻게 이렇게 맛이 없을 수가 있을까 싶어 버릴려고 했다가 쓰레기통에 들어 갈 기회를 놓쳐버린 만두.
근데 지금 다시 먹으니 뭐 어제보다는 괜찮네. 이따가 배만 아프지 않으면 되겠다.
세상에 이렇게큰 거미 태어나서 첨 본다. 색깔도 가히 위협적이다.
화촌면 성산리로 들어와 지구대에 들려 지도를 확인하고 나왔다.
풍성한 들녁. 바라만 봐도 좋다.
서울에서는 배추 무우가 비싸서 아우성인데 이곳에서는 쑥 뽑아다 가져가고 싶을 만큼 싱싱하게 잘 자라고 있다.
담쟁이가 물들어 가는 가을. 담벼락을 끼고 소슬한 바람이 넘나드는 골목.
이런 계절에 걷게 되어서 참 좋다.
홍천이 다 와 간다. 결운리 둔지라는 곳으로 넘어가자 홍천경찰서 가는 입간판이 보인다.
44번 국도를 벗어나 한참을 가도 되겠다.
어제 오면서 들렸던 홍천터미널을 보게 되네. 버스로 30분거리를 다시 오는데 하루반나절이 걸렸다.
홍천경찰서에 들려 다시 지도를 검색해 보고 무궁화공원을 지나갔다.
어느 집 칼국수다. 순전히 해물이라는 말에 끌려 들어갔는데 젊은 여주인이 방금 사온 해물을 이리 많이도 넣어 주었다.
차 한잔 같이 하면서 이런 저런 일상사를 주고 받고 일어났다.
다시 어둑해질 기미가 보였는데 이곳에서 서울행버스를 탈까 하다 양덕원까지 가기로 했다.
상오안리에서 다시 샛길로 들어섰다.
사진으로 찍어 둔 지도에는 이 길이 국도와 만나기는 하는데 그래도 길을 잃을까봐 사람이 보일때마다 묻고 물었다.
근데 국도로 돌아왔는데 이번에는 며느리고개아래 터널이 있다.
식당주인은 가깝다고는 하나 터널은 정말 피하고 싶다. 별수없이 옆길로 빠졌는데 고개를 올라갔다 내려오는 사이 해가 저버렸다.
길가 외딴집에 사시는 어른신은 밤이 늦었다며 양덕원까지 태워주신다고 하시는걸 거절하고 다시 국도변로 들어섰다.
어두워져서 걱정이 된다. 옷이라도 눈에 띄는 색으로 입고 오던가 했어야 하는데 후레쉬를 흔들면서 걸어갔다. 양덕원으로 빠지는 갈림길을 만나자 비로소 안심이 되었는데 그것도 잠시. 한참을 걸어도 터미널이 있는 동네가 보이질 않네. 얼만큼을 더 가야하는지, 혹 모르고 지나친 건 아닌지, 도착하더라도 서울가는 버스가 떨어진 것은 아닌지 걱정을 늘어놓으면서 걸어갔다.
다행이 7시를 넘긴 시간 정류장을 겸하고 있는 편의점을 만났다.
서울이 가까운 곳이라서 그런지 인심이 좋지는 않다. 화장실은 쓰지도 못하게 하고 말투가 퉁명스러웠다.
같이 서울행 버스를 기다리던 나이든 아주머니도 한말씀 하신다. 어찌나 쌀쌀맞고 불친절한지 ....
어제낮 인제군 신남면버스정류장 주인과 참 많이 다르다.
서둘러 서울의 집으로 가 샤워하고 눕고 싶은데 버스는 통 오지를 않네.
역시나 강원도산에서 서울로 넘어오는 차가 많아 도로가 정체되었단다.
코스
신남면버스정류장 ㅡ 두촌면사무소 ㅡ 두촌면 아오라지 야호동민박 1박 ㅡ 북창 백낙사 ㅡ 홍천군 화천면 성산리 ㅡ 홍천읍 결운리 둔지 ㅡ 홍천경찰서 ㅡ 무궁화 공원 ㅡ 오안초등학교 ㅡ 며느리고개 - 홍천군 남면 양덕원버스정류장
총거리 53.5km (44번 국도상)
첫날 24 km
둘쨋날 29 km
총거리는 수시로 마을길을 넘나들고 산길로도 다녔으니 실제로는 65 km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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