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822
모기떼에 시달리다 잠이 깼다. 아마 1-2시쯤 되었나본데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을 정도였다.
어젯밤에 보니 근처에 작은 웅덩이가 군데군데 있었다. 바람을 피한다고 온 곳이 제대로 모기서식지 에다 자리를 잡았던 탓이다. 집에서 가져온 바디키퍼라는 모기접근을 차단시켜준다는 액체스프레이는 아무 소용이 없다. 모기향도 없고 어쩌나.. 침낭을 뒤집어쓰고 잘려니 더워서 잠을 이룰 수가 없고 그 조차도 천을 뚫고 물어댄다. 모두가 깨어 두어 시간을 뒤척이고 교대로 개울로 달려가고 했는데 한참을 시달리고 난 뒤에야 불현듯 모닥불생각이 났다. 그렇지!!!
주변에서 마른 나무, 젖은 나무 가릴 것 없이 가져와서 발치께에 불을 붙였다. 매캐한 연기가 피어오르다 바람결에 낮게 번져갔다.
어느 결엔가 잠이 들었다.
그리고 회장님의 “기상!” 소리에 일어나니 날이 휜하다.
어젯밤 먹다 남은 밥을 다시 눌려 누룽지를 만들었다. 이런 곳에서는 특히나 숭늉의 맛이 각별하다.
다시 모자란 듯해서 라면을 하나 끊이고 커피까지 마시고 일어났다.
해는 보이질 않아 선선한 아침이다.
부쩍 키를 키운 벼들이 빽빽하게 논을 채우고 아래로 흐르는 물은 쉴 새 없이 볏대를 어르고 빠져나가고 있다. 어느 집의 닭이 목청을 돋우어 소리를 지르고, 지나는 길의 집집의 개들도 탱탱하게 목줄을 당기며 왈왈거린다. 본분을 다하는 것처럼, 하루의 시작을 그렇게 소리치며 시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아침을 이렇게 걸음을 옮기며 시작하고 있다.
한가한 구도로를 가다가 넓어진 신도로에 들어섰다. 차들의 날쌘 움직임과 굉음이 단박에 몸을 움츠려들게 만든다.
얼마쯤을 가자 삼거리가 나오고 오색으로 가는 좀은 좁아진 길이 나온다.
길가의 매점을 겸한 식당의 평상에 앉아 찬물에 흔들어 만든 냉커피를 마시고 잠시 쉰다.
비가 오지 않아 다행이기는 하지만 볕이 뜨거워 걱정스럽다.
아마 밤새 잠을 제대로 못 잔 탓인가 보다. 쉬 지쳐온다. 회장님의 발은 끊임없이 통증을 일으겨 쉬어가기로 한다. 바람이 선선하게 흐르는 개울가에 앉아 쉬기로 한다.
본격적인 고갯길을 들어서자 드문드문 공사현장이 보이고 있다. 작년에 심각하게 치룬 물난리가 올해 다시 재현되었다고 하네. 그래서 되풀이 공사를 해야 한다고 한다. 설악산이 육산이 아니라 바위가 많은 탓에 쏟아져 내리는 비의 양을 제대로 흡수를 못한다고 한다. 스며들지 못하고 계곡을 깎아내리며 쏟아지는 물의 양이 많아 도로를 휩쓸어 버리고 다시 모여 큰 개울가의 집들을 삼켜버린 탓에 인명이며 재산피해가 해마다 늘고 있다고 한다.
매년 이렇게 치러야 한다면 참으로 심각한 일이다. 자세히 보니 이번에는 예년과는 달리 유실된 도로를 재포장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아래 하수관을 묻어 물이 도로위로 넘쳐나게 하지 않게 하고 또한 도로확장및 자주 침수되는 곳은 계곡에서 비켜나 다리를 건설하고 있었다.
햇살이 점차 뜨거워져 가고 있다. 걸어가는 우리도 그렇지만 안전모까지 쓴 공사장의 일꾼들 또한 얼마나 힘겨울까 싶다.
오색약수로 들어서는 곳에서도 공사차량들이 점령을 하고 있었다. 어느 곳은 길이 완전히 끊어져 흙더미로 이루어진 곳을 밧줄을 잡고 올라가야 했었다. 그야말로 대대적인 공사를 하고 있었다.
배가 고파오는가 싶더니 오색마을이 다와 간다. 이곳의 초입에서도 공사를 하느라 어수선하다. 덤프트럭이 지나갈 적마다 날려서 쌓인 흙먼지가 다시 뿌옇게 날려 마을 전체의 공기를 탁하게 만들고 있다.
식당가를 어슬렁거리다 한 곳에 들어갔다. 손님이라고는 아무도 없다. 휴가가 끝나가는 시점인데다 주중이라 그런지 등산객도 별로 눈에 띄질 않는다.
산채비빔밥 정식을 시켰는데 얇게 부친 전과 복분자술 반병이 거저 나온다. 예상치 못한 서비스에 우리들 입이 벌어진다. 동동주 한 병과 비빔밥을 다 먹고 실장님이 약수를 뜨러간 사이 한 곁의 긴 의자에 누워 낮잠을 청했다.
오색약수는 설탕을 뺀 그야말로 사이다 맛이다. 귀한 약수 몇 모금을 마시고 배낭에 꽃아 두었는데 가는 동안 병뚜껑을 밀어내며 거품과 함께 계속 새어나와 배낭이며 옷을 적혔다. 다시 마셔보니 탄산기포가 빠져나간 물은 싱겁기도, 닝닝하기도 한 이상한 맛이었다.
지금까지는 차들의 왕래가 있었는데 설악산 대청봉으로 가는 최단코스인 오색약수매표소에 이르자 차량을 통제하고 있었다. 입구에서 사정을 이야기하고 지나가는데 어느 분이 가벼운 농담으로 우리를 격려해 준다.
본격적으로 차들이 없어진 도로에 들어서자 기분이 묘했다. 금지된 곳을 가고 있는 듯한 두근거림, 낮선 곳에 발을 디디는 것과 같은 설렘을 맞본다. 간간히 공사차량이라는 표지를 단 차들이 지나갈 뿐 풀벌레소리가 더욱 생생하게 들려오고 산짐승들이 자연스럽게 와다닥 뛰쳐나와 다닐 것 같았다.
몹시 덥다. 차량이 통제가 되었음에도 주유소며 매점 등은 영업을 하는 곳이 있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얼린 생수에 커피를 넣어 흔들어 마신다. 역시 차가운 것이 제일이다.
주전골매표소에 다다른다. 통제구역이 되어 문을 닫아두고 있다.
조금을 더 올라가자 용소폭포매표소도 텅 비어 있다.
한계령 구불거리는 고갯길을 오르는 중 ‘공병125대대’라는 표지석이 있다. 박대통령시절 이곳 한계령공사를 하면서 인력이 모자라 공병들을 투입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때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다치거나 희생되었던 사람도 있지 않았을까싶어 잠시 엄숙한 기분이 든다.
갈수록 경사는 급해지고 숨이 가프고 힘이 든다. 지도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이 길은 넓은 주름을 접은 것처럼 심하게 구불거렸다. 버스를 타고 수도 없이 지난 이 길을 걸어서 가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감동스럽다.
5시45분. 필레약수로 빠져가는 도로가 나타났다. 내리막 커브 길에 붙여 있는 곳이라 위에서 내려온다면 모르고 지나칠 수 있겠다. 몇 해 전 ‘우리만화가연대‘가 지났던 길이였다. 우리는 이곳으로 빠지지 않고 한계령을 넘어 인제를 거쳐 양구 쪽으로 갈 생각이다.
5시55분 한계령 해발920m
오늘의 목적지에 도착한다.
표지석에는 옛오색령이라고 적혀있다.
지쳤던 만큼 뿌듯함이 밀려왔다.
휴게소는 영업을 하고 있다. 당연히 영업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마 공사관계자들을 위해 몇이서 당직을 서면서 몇 가지를 팔고자 하는 정도인 것 같았다. 술을 몇 병사고 오색 쪽으로 향해 있는 유료망원경과 주차장 경계석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꼭 한사람이 누울 수 있는 공간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잘 적에도 일렬로 누우면 딱 안성맞춤일 것 같다.
직원들은 우리가 어떻게 왔는지 궁금한 모양이다. 어쩌면 이곳에서 하루를 잔다고 하면 뭐라고 할지도 몰라 별다른 말은 하지 않고 식사준비를 했다.
남은 먹을거리가 별로 없다. 2인분정도의 쌀로 밥을 하고 김치와 참치캔으로 찌개를 끓이고 조금 남은 멸치볶음을 꺼내놓았다. 그래도 소주와 곁들인 오늘의 만찬 또한 각별하다.
이곳에서도 해가 지고 있었다.
덥기는커녕 추워지려고 한다. 윈드자켓을 입고 보온자켓을 발치에 두르고 잠잘 채비를 했다.
하늘을 보니 엄청나게 많은 별들이 쏟아져 내릴 듯 떠있다.
개짓는 소리가 가끔 들리고 가끔 차들이 지난다.
08:45 상평리마을 출발
13:30 오색약수 점심
17:50 한계령 도착 (24.05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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