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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횡단-1차3일 070823

미라공간 2007. 9. 20. 22:28
 

070823

덥지도 그다지 춥지도 않아 잠은 잘 잔 것 같아 가뿐하다.

6시가 미쳐 못 된 것 같은 시간. 우리가 걸어 온 동쪽의 산등성이에서 여명이 들고 있었다. 제대로 된 일출을 보기에는 장소가 마땅치는 않다. 좀 더 높은 곳 조망이 있는 곳으로 가야하는데 산을 올라갈 수는 없는 일.

 

 

        

 

어젯밤에 저녁을 먹고 난 뒤로 가스가 바닥이 났다.  먹을 것 또한 인스턴트 죽이 다였다.

휴게소는 문을 열지도 않았으니 걸어가다가 매점이나 식당에서 아침을 해결해야 할 것이다.

 

이른 아침이라 더욱이 공사차량도 다니지를 않아 고요한 산속 길.

계곡사이로 선선히 들어오는 눈부신 햇살. 이슬을 머금은 풀잎과 바위와 흙더미에서도 빛이 반짝인다. 향기로운 아침이다.

 

 

      

 

  

교통통제 이틀째인데 가끔 만나는 공사장의 사람들이 우리를 보는 시선이 뜨악하다. 어떻게 이 길을 걸어가고 있는지 감이 잡히질 않는 모양이다. 설악산에서 이쪽의 어느 코스로 내려온다고 하더라고 하산을 금지시킬 것이며 내려왔다고 하더라도 타고 갈 차가 없을 텐데 어디까지 어떻게 걸어갈 생각인지 짐작하기가 힘들 것이다.

간간히 시선이 마주치면 그들에게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머슥하게 바라보는 사람. 얼떨걸에 인사를 받는 사람. 시원스레 혼쾌히 인사를 하는 사람.


예상과는 달리 한참을 가도 식당이든 휴게소든 매점이든 볼 수가 없다.

장수대매표소가 나타났다.

그 주변도 큰 공사를 하느라 분주한 모습인데 다행이 커피자판기는 작동이 되고 있었다.

아침 공복에 마시는 커피. 달콤한 자극이다.

 

 

     

 

 

  

 

 

 옥녀탕휴계소

멀리에서 휴게소간판이 보여서 반가웠다. 개울가 바로 곁에 자리하고 있어 경치 또한 얼마나 근사할까 싶기도 했다. 가까이 다가가 보았더니 폐허가 되어있었다. 수마가 휩쓴 처참한 자리라니...

어느 벽에서 떨어져 나와 비스듬히 기대어 세워져 있는 대형벽시계는 그날의 그 순간에 정지되어 있었다.  덩치 큰 티브도 입구에 비딱하게 놓여있다. 바닥에는 물에 휩쓸러 온 흙더미위에서 잡초가 성급하게 잎을 틔우고 있다.

아래층의 식당으로 내려가자 온갖 식기들이 난잡하게 흩어져 있었다. 깨어진 유리창. 부서진 문짝.

그날 밤 누군가가 이곳에서 잠을 자고 있지는 않았을까? 무사히 잘 빠져나왔을까?.


조금 더 내려가자 더욱이 심한 곳이 많았다. 군데군데 부서지고 비어있는 집들. 지나는 길에 이야길 듣자니 강원도청에서 수해피해를 본 집들을 사들어 없애고 개울을 넓힌다고 한다. 오랫동안 한자리에서 살아온 사람들에게 가슴 아픈 일이 되겠지만 매년 이런 물난리를 겪는다면 차라리 안전한 곳으로 이주를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11시가 다와 가고 있었다.

배가 고파오는데 식당은 쉬 보이지 않다가 다리 건너편에 제법 마을이 형성되어 있는 곳을 보니 이런저런 간판을 단 곳이 있었다.

그러나 가 보았더니 식당임에도 지금 밥이 없다고 하네. 소위‘한밭집’이라고 하는 공사현장의 근로자들에게 식사 제공하는 곳으로 바뀌어 버렸다.

뒤돌아서서 얼마큼을 내려오자 다시 문을 열어 둔 식당을 만날 수가 있었다. 역시 이곳에서도 밥이 없다고 하네.

그나마 라면과 부탄가스라도 살 수 있어 다행이었다.

계산을 하면서 “저 쪽 파라솔 있는 곳에서 라면 좀 끓여 먹어도 될까요?“  라고 했더니 너무나 뚝뚝한 중국교포의 말투가 튀어 나왔다. ”아 안돼요.! 그러려면 밥을 해서 팔지.“ 흡사 얌체 짓을 하다 들킨 것 같은 민망함이다. 꼭 저런 식으로 말을 해야 할까라는 생각이 든다. 가볍게 곤란하다고 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다행이 다른 여자 분이 길가 쪽 바위 옆에서 먹고 가라하네. 그래도 물은 얻을 수가 있어 길가에 앉아 코펠에 물을 붓고 버너를 켰다.

관광지 인심이 이런 거라고는 알고는 있었다. 사람도 귀할 때 반가운 거지 넘쳐나면 귀찮은 존재가 돼 버린다. 남녘의 전라도 땅에서는 라면 두 봉지를 사는데도 먹고 있던 고구마 광주리를 뒤적거려 크고 좋은 놈으로 골라 주시던 그 인심을 앞으로 만나기는 힘들 것이다. 사람의 왕래가 적은 시골이라 나누는 정이 각별한 것이지. 여기처럼 공사장근로자들로 하루 종일 넘쳐나는 식당에서 우리는 그저 성가신 존재일 뿐이다. 그나마 주인아저씨가 나와 평상에 자리를 잡게 해준 것에 고마워하고 식사 후 뒤처리나 잘 해야 할 것이다.

  

11시에야 비로소 아점을 해결하고 다시 찬물에 탄 커피를 흔들어 마시고 길을 걷기 시작했다.

점점 공사차량이 많아지면서 길가에는 뿌연 흙먼지를 쓴 농가들이 자주 보였다. 한계리였다.

머잖아 삼거리가 나오면 왼쪽으로 틀어야 하는데 실장님의 친구 분이 그곳으로 오신다고 한다.

 

 

                   

 

벼가 익어가고 묵직해진 고개가 숙여들고 있었다.

날씨가 너무나 맑아 쨍쨍한 하늘. 여전히 이곳에도 가로수는 없다.

한계삼거리에 다다르자 비어있는 휴게소가 있어 친구 분이 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한다. 화장실에 가서 얼굴과 손발을 닦고 나니 한결 낫다.

그늘진 주차장에 누워 눈을 감았는데 뒤에서 드나드는 차량들에 신경이 쓰여 선잠도 제대로 들 수는 없다.

 

                 

 

30여분이 지나 오신 그 분의 차에 올라 원통면으로 갔다.

보신탕을 드신다네. 나는 팥빙수 한 그릇으로  한 끼 식사를 때웠다.

시가지를 벗어나 가다보니 낡고 작은 집의 벽면에 무슨 글씨가 쓰여있었다. 다가가서 보았더니 '태평양전쟁유족회 인제지부'라고 쓰여있다.

세월이 이만큼 흘렸슴에도 아직도 전쟁의 상혼은 좀체 가시지않아 강원도의 땅 한 귀퉁이에 흔적이 남아있었다.

 

 

           

 

다시 인제 쪽으로 걸어간다. 신도로과 구도로가 갈라지는 곳이 있어 구도로로 들어섰더니 얼마안가 이곳도 도로공사중이네. 마치 우리가 도로공사현장답사를 나온 것처럼 이틀 내내 공사장을 지나게 된다.

땡볕아래 힘겹게 걸어가는 우리를 보더니 차 뒤편 그늘에서 쉬고 있던 한 무리의 근로자들이 우리를 부른다. “시원한 것 마시고 가세요.“아이스박스 안에서 나오는 음료하나씩을 입으로 가져가자 살 것 같다.

그 분들의 친절과 격려 한 마디에 힘을 얻어 다시 한 낮의 열기 속을 걸어간다.


4차선 도로로 빠져나와 인제방향으로 진행을 한다.

원래는 좀 전의 삼거리에서 양구로 빠졌어야 했는데 잘 못 들어섰다. 뒤에서 불렸는데 두 분은 낮술에 기분이 들뜬 탓인지 제대로 대답도 않고 그냥 앞서 가버린 때문이다. 다시 불러서 말을 제대로 했어야 했는데 나또한 더위탓이였는지 귀찮아져 뒤따라갔다.


한마음 산악회의 함문철님이 오신다고 한다. 고마운 일인데 내일이 근무라고 하시면서 오셨다가 돌아가시려면 많이 힘드실 것이라 좋아라 미안한 마음이 든다.


3시경. 인제시내를 지나는 동안 차들로 가득한 아스팔트의 열기가 더해져서 그랬을까? 어지럼증이 느껴졌다. 눈앞이 가물거리기까지 한다. 쉬어가야 할 것 같은데 일단은 이 어수선한 동네를 벗어나야 할 것 같아 좀 더 진행을 한다.

가다보니 다리 옆에 있는 개울. 그 곳으로 내려가서 발을 담그고 있다가 머리를 감고 나서 물속에 덥석 앉아버렸다. 너무 좋다.

 

 

            

 

젖은 옷을 대충 짜서 털고 배낭을 메고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다.

조금을 더 가자 운동장이 나와 잔디에 들어가 서성이다가 나와 터널을 지났다. 배낭 속에 넣어둔 귀마개를 꺼내서 끼우고 지나자 별 문제가 없다.

 

  

 

  

 

터널을 빠져나와 얼마 걷지 않아 소양강이 나타났다. 소양강 상류인 것 같은데 이렇게 넓은 줄은 몰랐다.

야영할 자리를 보느라 아래쪽으로 내려가 이곳저곳을 살펴보고 올라와 입구에 있는 손두부집으로 들어갔다. 주중이라 한가하다.

저녁은 먹을 수가 없고 막걸리와 부침개를 먹고 났더니 고만 극심한 졸음이 쏟아진다. 남의 영업장에서 누워 잘 수도 없고 앉아서 졸기에도 마땅치가 않다. 좀 전 회장님 말처럼 먹을 걸사서 자리를 잡고 있을걸 하는 후회가 든다.

얼마큼을 기다리자 드디어 나타난 함문철님. 얼음을 채운 보리차를 보냉병에 담고 먹을거리를 한가득 들고 나타나셨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다.

 

늦은 저녁을 먹고 예전의 선착장으로 가서 자리를 펴고 누웠다.

너른 강가에는 아무도 없다.

사방에 피운 모기향에서 특유의 냄새가 스멀거리며 번져나고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이 더없이 시원하다. 별은 촘촘히 떠 있는데 어젯밤처럼 가까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리고 아주 곤하게 잘 잘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으스스한 기운이 느껴진다.

꿈에서 흰 한복을 입은 노파가 아래쪽 계단에 앉아 나를 본다. 

 

 

06:25  한계령휴계소 출발

12:10  한계리삼거리

17:40  소양강 인제대교 도착

(28.25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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